이재명 대통령이 8일 국방과학연구소의 극초음속 활공비행체(HGV) 최초 시험발사를 참관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이재명 대통령이 8일 오후 국내 기술로 연구개발 중인 극초음속 미사일, 그 중에서도 활공비행체(HGV)의 최초 시험발사를 참관했다.
지난달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에 대해 직접적인 무력 대응 대신 첨단무기 시험발사 사실 공개를 택했다. 11년 전처럼 상황이 확전되는 일은 막고 북한에 경고를 보냄과 동시에, '자주국방' 역량을 강조하고 국내에서 제기되는 '저자세 대응'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복합적 행보로 풀이된다.
요격 까다로운 첨단무기…李 "강력한 자주국방 역량이 평화와 안정 지켜"
일반적인 탄도미사일(파란색)과 HGV(빨간색)의 비행궤적을 비교한 그래픽. 미 RAND 연구소 보고서 'Hypersonic Missile Nonproliferation' 캡처
HGV는 탄도미사일과 같은 추진체에 비행체를 실어 대기권 상층부까지 가속 상승시킨 뒤, 해당 비행체를 추진체와 분리시켜 대기권 내 낮은 고도에서 극초음속(마하 5 이상)으로 활공하며 표적을 타격하는 무기체계다.
포물선을 그리는 기존 탄도미사일과 달리 비행궤도를 바꾸며 불규칙 비행을 하기 때문에, 요격하기도 까다롭다. 이번에 처음 시험발사한 극초음속 활공비행체는 목표 고도로 상승한 뒤 성공적으로 분리됐으며, 극초음속 비행 환경에서 계획된 비행을 이상 없이 수행했다.
특히 가장 어려운 기술로 꼽히는, 활공비행체가 분리된 후에 낮은 고도로 강하하여 수직과 수평으로 자유롭게 궤도를 변경하는 불규칙 활공 비행을 완료하고 지정된 목표점에도 정확히 탄착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군의 강력한 자주국방 역량이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줄 것"이라며 "첨단 무기를 개발하고 실전배치해 국민들이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도록 정부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청와대와 군 당국은 이번 시험발사의 구체적인 비행거리, 속도·고도와 사진·영상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靑 "한반도 전장서 핵심표적 타격"…지뢰 사건 대응하되 확전은 자제
이 대통령이 이번 시험발사를 참관하고 그 사실을 공개한 이유는 우선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고에 대한 대응이 꼽힌다.
청와대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극초음속 활공비행체는 예측이 불가능한 비행궤적과 압도적인 비행속도로 유사시 주요 전략 목표를 기습적으로 제압하여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전략자산'"이라며, "한반도 전장 환경에서 핵심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새로운 억제수단의 본격적 확보를 위한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앞서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전날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뢰 폭발 사고 대응에 대해 대북 확성기 방송은 득보다 실이 많다며, MDL 이남 북한 지뢰지대 제거를 시작으로 한 여러 단계적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정부는 그간 지뢰 폭발 사고에 대해 직접적인 무력 대응 대신 군사분계선(MDL) 이남의 지뢰를 폭파하고, 북한에는 남북간 긴장 완화 메시지를 발신하며 MDL 획정을 위한 대화 제의를 해 왔다.
특히 지난 2015년 북한이 국군 장병들의 통행로를 고의로 노려 목함지뢰를 매설했던 일과 달리, 이번 사고엔 4개의 서로 다른 MDL 기준선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현 여부와는 별개로 북미대화 가능성이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에 강경 대응을 할 경우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정작 북한은 이를 '자작 광대극'이라고 폄하하며 대화 제의를 무시했고, 국내에선 '저자세' 논란까지 생기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대북정책 동력이 저하되는 일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국방부는 추석 연휴 기간에도 보수 야당 등의 성화에 밀려, 장병들의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지뢰 폭발사고 현장 조사를 예정보다 앞당겨 진행했다.
현 상황을 지나치게 확전시키지 않으면서도, 북한의 소위 '국경선 요새화'와 지뢰 매설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방법으로 첨단무기 전력 현시(show of force)를 택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는 이번 시험발사 뒤 이 대통령이 이른바 '괴물 미사일' 현무-5를 시찰한 사실도 공개했다. 현무-5는 탄두 중량만 8톤이라는 무게에 따른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를 활용해 지하 깊숙한 벙커도 파괴할 수 있는 성능을 지녔다.
北, 며칠 전 HGV 발사하며 한일 조롱…"소재나 정밀유도 등 우리가 우위"
북한이 지난 3일 발사한 '중거리 전략미사일' 사진. 연합뉴스이번 시험발사 참관은 북한의 HGV 시험발사라는 또다른 사건에 대한 대응 성격도 함께 지니고 있다.
북한은 지난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관 하에 동해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공개된 사진을 보면 북한도 여러 차례 시험발사했던 HGV로 보인다. 그의 친동생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이를 '중거리 전략미사일'이라고 칭하며 우리 군과 일본 자위대가 이 미사일의 비행거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했다.
김 부장은 "파도식 비행궤도 방식을 적용했을 때 적들은 1차 도약점 이후 목표를 소실했다"며 "저고도에서 비행궤도 변경 능력을 갖고 있고, 인공지능을 도입했다고 한 우리의 발표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 타격을 피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도 덧붙였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한미는 확고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북한이 최근 발사한 미사일은 한미가 보유한 방어자산으로 충분히 탐지·요격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요격이 가능하다는 반박 자체는 5년 전 북한이 처음 HGV를 발사했을 때부터 제기했지만, 이번엔 우리 쪽에도 같은 무기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보다 직접적인 대응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HGV는 대기권 안에서 장시간 비행해야 하는 만큼 공기와의 마찰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 등을 어떻게 버틸지 등이 관건이다. 위성 등을 통해 먼 거리에서 목표까지 정확하게 유도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 같은 기술은 우리가 북한보다 우위에 있다.
사회주의 과학기술 전문가인 KAIST 이춘근 이사는 "소재나 정밀유도 측면에선 우리가 북한보다 기술이 더 발전했다고 본다"며 "북한에 대한 상대적인 자신감, 즉 능가할 수 있다는 측면을 보여주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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