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금융위원회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등 수도권에 있는 중앙행정기관 44곳, 공무원 정원 기준 9929명을 세종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수도권 과밀을 완화하고 세종 중심의 국정 운영체계를 강화한다는 취지지만, 금융기관의 예고된 반발부터 법 개정, 대통령실·국회와의 시너지 효과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공무원 1만 명 세종으로…당장 내년에 3천 명 이동한다
정부는 지난 13일 '2차 중앙행정기관 이전 계획'을 발표하고 수도권에 있는 44개 기관을 세종으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수도권 공공기관 350여 개의 이전계획을 올 4분기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한 데 이어 이번에 중앙행정기관 이전계획을 구체화했다.
이날 계획을 발표한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현재 수도권에 있는 총 142개의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검토한 결과 중앙부처는 모두 세종으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이전 대상 공무원은 정원 기준 9929명이라지만, 여기에 청사 관리 인력과 공무원을 상대로 일하는 민간인, 이들의 가족까지 고려하면 실제 이동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민간 건물을 빌려 청사로 사용하는 기관 27곳(2995명)은 2027년 중 이전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등 6개 기관은 상반기에,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각 부처 소속기관과 자문위원회 등 19개 기관은 하반기에 옮긴다.
수사·보안 등 업무 특성상 독립청사나 특수시설이 필요한 17개 기관(6934명)은 청사를 신축한 뒤 2031년까지 순차적으로 이전한다. 경찰청과 중대범죄수사청 등 형사사법기관과 국방부 등이 대상이다.
'예고된 반발' 금융위 이전…금감원 등 다른 금융기관 이전 어쩌나
금융위는 산하 금융정보분석원까지 포함하면 이전 대상 인원이 420명으로, 이전 대상 기관 가운데 인원이 가장 많다.
금융위는 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 및 민간 금융회사와의 협업이 중요한데, 다른 금융 공공기관의 이전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금감원과 한국은행 등 금융기관의 이전 여부를 올해 4분기 발표할 공공기관 이전계획에서 밝힐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금융공공기관의 사실상 세종 이전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전력이 있다. 지난해 가을 기획재정부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하면서 금융위 등의 국내 금융 업무를 재경부에 맡기려 했지만, 반발에 부딪혀 포기했다. 이 과정에 당시 세종 이전에 반대하던 금감원 노조가 '상복 시위' 등 집단행동에 나선 영향이 적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위 이전 명분에 대해 "금융정책은 금융시장, 유관기관과의 긴밀한 연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관계부처 간의 정책 협의 조정도 필요한 정책"이라며 "금융시장의 대응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세부 이전 계획을 세울 때 별도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금융위의 감독을 받지만, 정부 내부 조직이 아닌 특수법인이다. 정부가 일반 행정기관과 같은 방식으로 금감원의 이전을 강행하기는 쉽지 않다.
직원들의 정착 문제도 변수다. 세종 이전으로 주거 및 집값 문제, 자녀 교육, 배우자의 직장 등 생활 여건이 달라지면서 이직을 선택하는 직원이 늘어날 수 있다. 금융기관 인력 특유의 업무 전문성을 고려하면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로펌 등 민간 부문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높고, 이들을 대체할 인력을 충원·양성하기도 쉽지 않다.
이전 열외 5개 부처도 이전…법 개정·외교 및 안보 조율 관건
2005년 세종시 건설을 추진할 당시부터 이전 대상에서 제외됐던 외교부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성평등가족부 등 5개 부처의 이전도 과제다. 이들 부처는 아예 현행 행복도시법 제16조에 '이전 제외기관'으로 규정돼 있지만, 이번 2차 이전 계획에는 모두 포함됐다.
현재 이들 부처를 이전 제외기관에서 삭제하기 위한 관련 개정안들이 여당 의원들이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는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 법이 개정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 이들 부처가 이전 대상에서 제외됐던 배경에 대해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과 국회 소재지가 수도'라는 결정문이 있었고, 이로 인해 대통령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된 기관들을 검토했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재검토 결과 국회에서 논의를 한번 받아볼만하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법 개정 과정에서 야당과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은 만만치는 않을 전망이다.
물론 충청권의 민심을 야당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국회 다수를 점한 여당이 법 개정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기관과 달리 외교부와 통일부, 국방부가 이전하려면 주한 외국공관이나 군 지휘부 등과 긴밀한 조정이 불가피하다. 더구나 최근 복잡하게 꼬인 외교 상황과 경색된 대북관계를 고려하면, 이들 부처가 세종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정치적 부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발표에는 대통령 집무실은 2029년, 국회 세종의사당은 2033년 준공하겠다는 기존 계획만 재확인했을 뿐, 추가 계획은 담기지 않았다. 윤 장관은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등 대통령 연계 기관의 이전은 대통령 집무실 완전 이전 시기 등을 고려하여 별도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집무실이 서울에 그대로 머무르는데, 외교·군사·북한 관련 중요 사태가 발생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소집될 경우, 세종의 관계자들이 이동하거나 화상회의로 대응하기에는 물리적·보안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국회 언제, 얼마나 옮기나…세종 이전 성패 가른다
대통령실·국회 이전 계획이 확정되지 않아 발생하는 부담은 외교·안보 분야만의 일이 아니다.
세종시에 정부청사가 들어선 지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종시는 '반쪽도시', '유령도시'의 악명을 떨쳐내자 못하고 있다.
국정 운영의 핵심 기관인 대통령실과 국회는 여전히 서울에 있으니, 대통령실 업무보고나 국회 협의 등을 위해 서울로 향하는 공무원들로 오송과 서울을 오가는 KTX 열차는 언제나 만석이다.
세종의 한 중앙행정기관 공무원은 "거의 매일 아침 서울행 KTX를 예약해둬야 한다. 언제 서울로 출장을 가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라며 "젊은 공무원들은 그나마 세종에 가족과 함께 정착한 사례가 많아졌다지만, 이와 별개로 우리는 업무상 수시로 서울을 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부처 공무원으로서는 국정감사, 예산 시즌이면 국회에서 살다시피 해야 한다"며 "평소에도 대통령실에 업무보고를 하고, 업무상 각종 단체, 전문가 등도 만나다보면 평일에는 세종에만 머무르는 날보다 서울에 있는 날이 더 많다"고 말했다.
대통령실·국회가 다 지어질 2033년에 이런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세종시에 가장 먼저 이전했지만 사실상 서울에서 주로 업무를 보는 국무총리처럼 대통령 집무실, 국회 세종의사당이 빈 집으로 머무른다면 '행정수도 세종시' 구상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결국 대통령실과 국회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인력과 기능이 이전하느냐는 윤곽이 들어나야 '행정수도 세종시'의 완성 여부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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