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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옛날 영화에서 '조희대 같은 걸'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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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화면 캡처넷플릭스 화면 캡처
요 며칠 아이피(IP) 티브이 속 옛 한국 영화에 붙들렸다. '이브의 건넌방'과 '거리의 악사'와 '풀잎처럼 눕다'와 '육체의 약속'과 '화녀'와 '가시를 삼킨 장미'와 '당신만을 사랑해' 들이다. 모두 무료. 정확히는 잠깐잠깐 나타나는 영화 속 옛 풍경에 붙박였다.

티브이 속 이런저런 무료 영화를 살피다가 '이브의 건넌방' 개봉 연도인 1987년에 사로잡힌 게 시작. 내가 열아홉 살이던 때 한국 모습이 담겼을 성싶어 관람 버튼을 눌렀다.

우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남산도서관이 뚜렷이 보였다. 거리낄 건물 없이 툭 트여 가까이. 대학로와 김포공항도 담겼다. 공항 현수막에 '제5차 세계올림픽연합회 서울 총회'가 1986년 4월 21일부터 26일까지 국제공항관리공단에서 열린다고 쓰여 있는 걸 보니 영화를 찍은 건 1986년이다. 전두환·노태우 패거리가 1986년 9월 아시안 게임과 1988년 9월 올림픽을 내세우고는 물낯 아래에서 장기 독재를 꾀하던 때.

1987년 서울 모습이 더 잘 담긴 영화는 '거리의 악사.' 이화여대와 담배 '솔'과 보라색 시내버스가 보였다. 제작 날짜가 1987년 4월 22일이니 전두환이 물낯 위로 드러낸 4·13 호헌 조치로 시민이 바란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짓밟은 무렵이다.

나는 재미가 들어 화면을 빨리 감아 가며 여러 영화 속 옛 풍경을 찾았다. 1983년 작 '풀잎처럼 눕다'엔 짓고 있던 여의도 63빌딩이 보였다. 1975년 작 '육체의 약속'에선 서울역 앞 대우센터가 뼈대만 보였고.

1984년 6월 촬영한 여의도 63빌딩 일대의 전경. 서울기록원 제공1984년 6월 촬영한 여의도 63빌딩 일대의 전경. 서울기록원 제공
지난 40년여 동안 공덕동에 많은 건물이 솟았다. 여의도 공원에서 남산도서관을 뚜렷이 볼 수 없게 된 것. 63빌딩을 찾는 관광객 발길 뜸하고, 세계가 넓어 "할 일 많다"던 김우중이 대우센터를 빠져나간 지도 오래다.

옛 여의도 광장과 63빌딩과 대우센터에 서린 수많은 노동자 시민의 슬픔과 기쁨. 특히 피땀. 여의도 광장과 남산도서관 사이에 수많은 건물을 지어 올리며 세상을 바꾼 진짜 피땀이다. 수많은 옛 노동자 시민도 영화 찍는 카메라에 눈길 맞추며 화면 밖 2025년 한국을 바라보는 듯했다. (실제로 옛 영화 속 거리에 선 여러 시민 눈길과 카메라가 마주 닿는 일이 잦았다.)  

영화 내용은 그야말로 옛 엉망. "내가 여편네 버릇을 잘못 가르쳤다(1971년 작 '화녀')"는가 하면 가수가 되고 싶어 찾아온 여성을 타일러 돌려보낸답시고 예사로이 어깨에 팔 두르고 엉덩이를 툭 쳤다(1978년 작 '당신만을 사랑해'). 여성과 사회 약자를 깔보거나 업신여기는 말과 몸짓이 곳곳에 넘쳐 났다.

세계가 넓어 이리저리 뛴다며 어깨에 힘주던 김우중이 홀로 대우센터를 짓기라도 한 듯 한껏 추어올리던 모습 그대로. 박정희가 독재하다가 죽은 뒤 전두환·노태우가 쿠데타를 일으키니 한 번 더 납작 엎드린 자 많았던 때.

그 무렵 영화 속 풍경에서 나는 '조희대 같은 걸' 봤다. 옛 서울대 법대. 까까머리에 새카만 교복 입고 시험 잘 치르면 갈 수 있던 최고치. 옛 사법 시험. 일제가 심은 체계 거의 그대로. 옛 1등 선민 의식. 올곧은 이보다 시험 잘 치르는 자를 추어올린 몹쓸 교육 체계에서 한껏 들어 올린 턱과 어깨. 뒷방 백면서생. 공판 서면 따위에 매였을 뿐 진짜 세상일에는 경험과 관심이 없는 자.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식 당시 사진. 박종민 기자조희대 대법원장 취임식 당시 사진. 박종민 기자
1979년 서울대 법대를 나온 조희대는 1980년으로 이어진 '서울의 봄'을 어찌 봤을까. 1981년 제23회 사법 시험에 합격한 조희대는 광주 시민 짓밟고 대통령이 된 전두환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법관이 되기 전에 아르바이트라도 해 봤을까. 아주 조금이나마. 올곧은 법관이 되기 위해 세상 삶터 피땀을 알아보려 했을까.

사법 시험을 최고로 치며 매달린 옛 세태. 책상 위 종이쪽과 맵고 신 진짜 삶 사이 같은 것. 이른바 '조희대 같은 건' 오래전에 태우거나 묻었어야 할 쓰레기이다. '조희대 같은 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판을 몰아쳐 민주주의를 흔들 때까지 내버려두지 말았어야 했다. 진즉 법관을 시민이 뽑았어야 했고.

굳이 밝혀 둔다. 내가 옛날 영화에서 '조희대'가 아닌 '조희대 같은 걸' 본 건 내 생각을 담았기 때문이다. '사실'을 적시한 게 아니라 '의견'이란 얘기. 이 표현이 일반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시비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다.

이은용 칼럼니스트이은용 칼럼니스트이은용 칼럼니스트.
- 전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 전 뉴스타파 객원기자

※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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