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싸구려 취급받던 중국 전기차 배터리가 중국 내수 시장은 물론 전세계 배터리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가고 있다. 반면,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한국 배터리 산업은 중국의 공세에 밀려 시장 점유율이 갈수록 하락하는 등 고전하고 있다.
4년 연속 점유율 1위 CATL…LG엔솔 제치고 2위로 올라선 BYD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업체인 중국 CATL이 20일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올해 전세계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혀왔던 만큼 이날 CATL의 주가는 공모가(263홍콩달러) 대비 16.42% 상승했고, 다음날인 21일에도 10%가 넘는 상승폭을 기록했다.
지난 3월 미국 국방부가 CATL을 '중국 군사 기업(Chinese military companies)' 명단에 추가하며 제재에 나선만큼 투자에 제한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IPO에 거액 투자금이 몰린 것은 그만큼 시장에서 CATL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은 지난해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37.9%를 기록하며 4년 연속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올해 1분기(1~3월)에도 38.3%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CATL 뿐만 아니라 미국 테슬라를 제친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기업이자 배터리 생산기업이기도 한 중국 BYD의 올해 1분기 시장 점유율은 16.7%를 기록했다. 두 업체만 합쳐도 점유율이 55%에 달하며, CALB와 고션 등 나머지 중국 기업까지 합치면 시장 점유율은 60%를 훌쩍 넘는다.
中 당국 지원 등에 업고 R&D 박차…'5분 완충'에 '꿈의 배터리'까지
연합뉴스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급성장 배경에는 중국 당국의 강력한 지원책이 있다. 당국 주도로 배터리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중국은 각 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은 물론, 전기차 구매 지원금 등의 간접 지원을 통해 시장의 파이를 키워왔다. 2011년 설립된 CATL이 10여년 만에 세계 시장을 제패한 배경이다.
그러나 당국의 지원책 만으로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급성장했다고 치부하면 큰 오산이다. 비록 당국을 등에 업고 자국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는 했지만 동시에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R&D(연구개발)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혁신을 거듭해 왔다.
실제 지난 4월말 개막한 상하이모터쇼에서 CATL은 5분 충전으로 520㎞를 주행할 수 있는 '선싱'(Shenxing)의 2세대 배터리와 저렴한 가격에 화재 위험까지 낮춘 2세대 나트륨 이온 배터리 '낙스트라'(Naxtra)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대거 공개했다.
이에 앞서 BYD 역시 지난 3월 중순 5분 충전으로 400㎞를 주행할 수 있는 '슈퍼 e-플랫폼'을 공개했으며, 이미 해당 배터리를 자사의 전기차에 탑재해 판매하고 있다. 왕촨푸 BYD 회장은 "BYD의 목표는 충전 속도 면에서 '석유와 전기의 동일한 속도'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무게와 부피, 화재위험, 충전시간 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게임체인저',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2~3년 내에 전고체 배터리의 산업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韓 배터리 3사 점유율 1년새 급감…심지어 韓 시장까지 넘보는 中
반면, 한국 기업들의 입지는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올해 1분기 합산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4.5%P 하락한 18.7%에 그쳤다. 각 사별로는 LG에너지솔루션이 10.7%로 BYD에 2위 자리를 내줬다. SK온은 4위(4.7%), 삼성SDI는 7위(3.3%)를 각각 기록했다.
미국이 고율관세는 물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보조금 정책을 통해 중국산 배터리가 세계 최대 시장 가운데 하나인 자국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배터리 기업의 점유율이 갈수록 하락하는 것은 중국과의 기술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현재 세계 배터리 시장의 표준은 중국이 택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로 수렴되고 있다. 안정성이 높고 가격이 저렴한 LFP 배터리는 최근 기술발전으로 에너지 밀도가 낮다는 단점도 크게 개선됐다. 이에 니켈·코발트·망간(NCM) 기반 삼원계 배터리에 집중해온 한국 기업들도 후발주자로 LFP 배터리 시장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한국 배터리 시장까지 넘보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 CATL은 올해 1월 한국 법인(CATL Korea Co., Ltd.)을 설립했다. 법인 설립 목적으로는 배터리, 전력저장설비 및 관련 물품에 대한 각종 사업, 배터리 재활용 관련 사업 등을 내세웠다.
SNE리서치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배터리 시장의 큰 변수로 지목하며 "한국 배터리 산업은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유럽의 친환경 규제 강화, 중국의 가격 압박이라는 복합적인 환경 속에서 새로운 성장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