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대선 관련 입장을 밝힌 뒤 퇴장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6·3대선의 관전 포인트는 승자가 누구냐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이재명이 제일 쉬운 상대"라던 국민의힘의 호언은 위악으로 보였다. 12·3 비상계엄 이후 굳어진 '어대명'을 뒤집기 어렵다면, 표 차라도 최소화해 보자는 것이 지도부에겐 차선의 과업이었다.
즉, 이 대통령의 과반 득표 여부는 곧 '국민의힘 후보가 40%대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였다. 당적도 없는 무소속 후보와 무리한 단일화를 밀어붙인 고육책은 이와 무관치 않았을 터다.
실제로 '아스팔트 우파'로 평가돼온 김 전 후보가 최종 주자로 확정되자, 당 안팎에선 "40%도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추정 득표율 39.3%)도 이같은 심증을 뒷받침하는 듯했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예상치를 상회한 41.15%(1439만 5639표)였다. 뜻밖의 선방(?)에 일각에서는 '샤이 보수' 표심을 주목한 언론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다.
이유야 어떻든 김 전 후보의 득표율은 국민의힘의 '자기객관화'에 되레 독(毒)이 된 것으로 보인다. 선거 후 당 수습책 등을 논의한 의원총회에서
"제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란 말 좀 하지 말자"는 쓴소리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소장파로 분류되는 이 의원은 "전체 득표율만 볼 게 아니라 내용을 봐야 한다"고 했다.
지역별로 세분화해 보면 '8.27%p'라는 격차의 진면목이 다가온다. 보수 텃밭인 부·울·경(부산·울산·경남)마저 접전 지역이 돼버린 점은 상징적이다. △부산(김문수 51.39% vs 이재명 40.14%) △울산(김문수 47.57% vs 이재명 42.54%) △경남(김문수 51.99% vs 이재명 39.40%) 등 모두 김 전 후보가 앞서긴 했으나, 광주에서 8할 이상의 지지율을 수성한 이 대통령의 득표율을 보면 체면 치레라 보기도 면구스러운 수준이다.
한 발짝 더 들어가 이번 대선이 총선이었다면 '개헌 저지선'이 무너졌을 거란 분석도 나왔다. 중앙일보는 이번 대선의 읍·면·동 득표율을 22대 총선에 대입하면 민주당은 170석, 국민의힘은 81석이 됐으리란 계산을 내놨다. "개헌선은 지켰다"며 애써 자위(自慰)하던 작년 4월보다 사정이 훨씬 악화된 셈이다. 이대로 간다면 내년 6월 지방선거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패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하다.
"계엄은 잘못됐다"고 하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삼아 선거를 치르는 집권 여당을 보면서, 전자에 방점이 찍혔다고 보는 유권자는 드물었을 것이다. 중도층이 집결한 수도권의 민심 이반이 이를 역설한다.
김 전 후보는 첫 대선후보 TV토론 당시
"윤 대통령의 계엄은 잘못됐고 제가 알았다면 당연히 말렸을 것"이라고 말한 동시에 "(계엄이) '내란이냐' 하는 것은 현재 재판 중"이라고 했다. 이러한 발언을 합리적이라고 여긴 무당층은 또 얼마나 됐을까. 그날은 공교롭게도 내란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환기하게 되는 5월 18일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이라도 탄핵반대 당론을 무효화하자'는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의 제안은 사실 거창한 쇄신이랄 게 없다.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탄핵 인용이란 정산서를 받아들고 과거의 오류를 뒤늦게 바로잡으려는 정정(訂正)에 가깝다.
적어도 계엄의 주동자인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한 것이 '내란 (동조) 정당'이란 자당의 올무가 됐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의총장에서 여전히 '격론'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선거에 이긴 정당처럼 행동하는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많다. 정신 차려야 될 때"라는 통탄을 이끌어냈을 것이다.
'반탄 당론 철회'에 가장 격렬히 반대하는 친윤(친윤석열)계도 '성찰과 혁신'이 필요하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다만 '긁어 부스럼은 만들지 말자'고 한다. 이번 대선의 최대 촌극으로 평가되는 '김덕수(김문수+한덕수) 단일화' 파동과 관련, 당무감사권을 발동한 김 위원장을 마뜩찮게 바라보는 시선도 여기에 기인한다.
당시 지도부였던 권성동 원내대표는 12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가업(家業)을 이어받을 때, 자산과 부채는 함께 승계된다. 일부만 취하는 행태는 기회주의면서 분파주의"라고 했다. 언뜻 그럴 듯한 비유로 들리지만 결국 계엄과 탄핵이란 부채를 청산할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제1야당이라는 자산" 자체가 그 빚에 잠식될 수 있다는 고려는 왜 없나. '분열의 늪'을 넘어서자는 권 원내대표의 마지막 당부가 예정된 의총을 김 위원장과 일체 상의 없이 40분 전 일방 취소한 당사자의 조언으로 적절했는지도 의문이다. "하루 이틀 의총이 늦어진다 해도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느냐"는 그와 "이번 주말에라도 의총을 열어 달라"고 요청한 재선 의원들 중 어느 쪽이 쇄신에 대해 절박할까. 계파 갈등과 당내 민주주의 훼손 중 무엇이 더 근본적 문제일까.
대여(對與) 투쟁이 힘을 받지 못하는 진짜 원인은 어디에 있나. "오죽하면 위헌정당 해산 심판 얘기가 나왔겠느냐"는 당 관계자의 반문이 푸념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