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시성의 희토류 광산. 연합뉴스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맞서기 위해 내놓은 희토류(rare earth elements) 수출 제한 조치가 미국은 물론 전세계 산업계를 공포에 떨게하는 등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가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벌인 1차 무역전쟁에서는 적절한 반격 카드를 내놓지 못해 미국에 끌려다녔던 중국은 이번 2차 무역전쟁에서는 희토류를 앞세워 오히려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무역협상 핵심 의제는 '희토류'…수출 통제 파급력 확인
미국과 중국 대표단이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 무역협상 이후 한달 만인 지난 9일과 10일 영국 런던에서 다시 만나 2차 무역협상을 벌인 끝에 희토류와 핵심기술 등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를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사실상 핵심 의제는 '희토류'였다. 앞서 1차 무역협상에서 양국은 관세율 115%P 인하와 함께 각종 비관세조치 해제를 약속했지만 중국은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는 해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중국이 무역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반도체 설계 등 핵심 기술 수출 금지 조치를 내놨고, 결국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전화통화 끝에 이번 협상이 열리고 합의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12일 "중국과 무역협상의 일환으로 미국이 수출 통제를 협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며 "양국 경제관계에 대한 미국의 접근방식에 있어 획기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가 핵심 역할을 했다며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이 수출 통제와 무역협상을 연계하도록 이끌었는데 이는 중국이 오랫동안 요청했던 바"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2차 무역협상 뿐만 아니라 미국이 중국에 145%의 관세 폭탄을 투하한지 한달도 안돼 1차 무역협상에 나선 것도 역시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중 런던 고위급 무역협상. 연합뉴스각국 희토류 생산 손사래 칠때 中 40년 넘게 산업 육성
희토(rare earth)라는 그 명칭과는 달리 희토류는 지각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원소이다. 하지만 금, 은, 철 등 다른 금속과 달리 특정한 형태로 농축돼 있지 않아 경제적으로 채굴하고 정제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희토류 생산에는 풍부한 매장량, 관련 기술과 인프라 등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특히, 정제 과정에서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각국은 희토류 생산을 꺼리고 있다.
하지만 희토류는 항공·우주, 전기차와 배터리, 로봇, 드론과 레이저 등 광범위한 산업에서 두루 쓰이는 핵심 소재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생산에 나서야 하고 중국이 그 역할을 맡은 것.
그 결과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덩샤오핑)는 말처럼 중국은 희토류에 대한 압도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 미국도 자국에서 채굴한 희토류를 중국으로 보내 정제·가공할 정도다.
이는 중국은 국가 주도로 1980년대부터 일찌감치 희토류 생산에 나서 기술과 시장, 그리고 전문인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정제·가공의 90%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맞서 부쩍 자주 희토류 수출 통제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등 서방진영에서 희토류 공급망의 '탈중국'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좀처럼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희토류 부족에 美 산업계 비명…"中 조용히 우위 확보"
미국과의 2차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40년 넘게 키워온 희토류 산업이 제대로 힘을 발휘했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에 폭탄 관세를 퍼부은 지난 4월부터 사마륨, 디스프로슘 등 7종의 희토류 수출을 통제했다
희토류 수출 통제의 후폭풍은 곧 미국 산업계를 강타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3대 자동차 브랜드들이 희토류 부족으로 생산공장 가동을 멈출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또, 일부 자동차 브랜드는 희토류가 들어가는 부품의 생산을 중국으로 이전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에서 생산된 부품을 쓸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지만 희토류 부족이 더 시급한 문제였던 것.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만드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도 지난 4월 로봇 팔 부분의 작동기에 희토류 영구자석이 쓰인다면서 "옵티머스는 중국발 희토류 자석 이슈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록히드마틴이 생산하는 F-35 전투기 등 방산 산업도 희토류 부족으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다 미국 뿐만 아니라 일본과 독일 자동차 기업들도 희토류 수출 통제의 피해를 입었다.
밴티지마켓츠의 헤베 첸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를 지적하며 "미국이 무역 협상 재개에서 주도권을 잡은 것처럼 보였지만 중국이 조용히 우위를 확보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