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사실상 결렬될 조짐을 보이면서 중동 지역 안보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 일부 지역에서 자국 인력을 철수시키기로 했다.
11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중동에 대해 "위험한 곳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빠져나오고 있다. 어떻게 될지 지켜볼 것"이라며 "철수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같은 날 앞서 보도된 외신 내용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로이터 등은 이날 미 국무부가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 인력 철수를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철수는 민간 수단을 통해 이뤄지지만, 필요할 경우 미군이 지원할 준비도 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내 긴장 완화 방안과 관련해서는 "매우 단순하다"며 "이란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국무부는 이날 '이라크 여행 경보' 관련 공지를 통해 "비상 인력이 아닌 미국 정부 인력의 철수 명령을 반영해 이라크에 대한 여행 경보를 업데이트했다"면서 이라크의 미국 대사관에 대한 '철수 명령'을 공식 확인했다. 여행 경보 수준은 최고 등급인 '4단계(여행 금지)'로 격상됐다.
국무부는 이라크 내 테러, 납치, 무장 충돌, 사회 불안, 그리고 미국 정부의 긴급 대응 역량 제한 등을 이유로 들어 "어떤 이유로든 이라크로 여행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바그다드 국제공항 역시 미국 정부 인력의 이용이 금지됐다.
로이터는 이번 조치가 "가자지구 전쟁 이후 18개월 만에, 중동에서 긴장이 다시 고조된 시점에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 협상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 이란을 공격할 수 있다고 수차례 시사해 왔다. 그는 이날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란이 우라늄 농축 중단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점점 줄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미 CBS는 이스라엘이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최종 결렬될 경우를 대비해 이란 핵시설을 직접 타격하는 계획을 세우고 무기 재배치와 공군 훈련을 완료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 정부는 이스라엘이 군사 행동에 나설 경우,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보복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국방장관 아지즈 나시르자데는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분쟁이 강요된다면, 피해는 미국 쪽이 훨씬 클 것"이라며 중동 내 미군기지를 겨냥한 공격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이란과의 6차 비핵화 협상이 오는 15일 오만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측에서는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가 참석해 이란의 압바스 아락치 외무장관과 접촉할 계획이다.
한편, 이라크 대사관 인력 외에도 중동 지역에 파견된 미군 가족들의 대피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미국 당국자는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바레인 등지에 주둔한 군인 가족들의 자진 대피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현재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병력을 배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