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12사단 훈련병 얼차려 사망사건 피해자인 박모 훈련병의 모친이 18일 서울고법 춘천재판부에서 열린 가해자들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발언하는 모습. 구본호 기자.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발생한 훈련병 '얼차려 사망 사건'과 관련해 핵심 가해자인 중대장이 더 무거운 죗값을 치르게 됐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이은혜 부장판사)는 18일 학대치사와 직권남용 가혹행위 혐의로 기소된 중대장 강모(28·대위)씨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부중대장 남모(26·중위)씨에게는 원심과 같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5월 23일 인제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 6명을 대상으로 군기훈련을 실시하면서 군기훈련 규정을 위반하고 실신한 박 훈련병에게 적절하게 조처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 피고인들이 여러 피해자들을 상대로 별개의 범죄를 저지른 '실체적 경합'에 해당한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강씨에게 징역 5년을, 남씨에게 징역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이 6명의 훈련병에게 군기훈련을 실시하면서 각 피해자에 대해 다른 양상의 가혹행위를 했고, 침해된 법익도 각기 달라 하나의 행위가 아닌 다수의 독립된 범죄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규정을 어긴 군기훈련을 지시한 중대장 강모씨가 지난해 6월 21일 춘천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 구본호 기자군기훈련이 군 형법상 가혹행위 내지 형법상 학대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피해자 사망을 예견할 수 없었다는 피고인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훈련 도중 반복적으로 쓰러지고 고통을 호소했음에도 피고인들은 훈련을 멈추지 않았고 체력 상태 확인이나 적절한 응급조치 없이 훈련을 강행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학대행위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역시 명확하다"고 판시했다.
재판 과정에서 훈련에 함께 참여했던 피해 훈련병 중 3명은 최근 피고인들과 합의했으나 사망한 박 훈련병 유족과 피해자 2명은 공탁금 수령을 거절하고 가해자들의 엄벌을 촉구해 왔다.
재판부는 "형량을 정함에 있어 피고인들이 일부 피해자와 합의했고 초범이라는 점은 고려하되, 사망 유족의 용서가 없고 엄벌을 강력히 탄원하고 있는 점, 그리고 훈련 규정을 반복 위반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1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 마련된 육군 12사단 박 훈련병 시민 추모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항소심 선고 말미에 재판부는 징병제로 군에 입대한 병사들의 생명과 인권을 침해한 행위에 대해 엄중히 질책했다.
이 부장판사는 "군 복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의무이며 국가가 병사의 생명과 인권을 최우선으로 보호할 책무를 저버린 것에 대해 그 책임은 매우 무겁다"며 "훈련의 목적이 병사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님에도 이번 사건은 지휘관이 규정을 무시한 채 인권과 생명을 침해한 대표적인 후진적 병영문화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재판이 끝난 뒤 숨진 박모 훈련병의 모친은 법정에서 쓴 글을 통해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자로서 입영 통지서에 불응할 시 징역에 처한다는 천둥같은 통지서를 받고 순종해 입대한 지 10일 만에 썩고 병든 군대의 지휘 체계 속에서 아들이 죽음을 당했다"고 운을 뗐다.
"군대야 말로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무식하다 못해 무지한 지휘자들을 이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인 예비군인 청년들을 위해 군인 조교부터 국방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올바른 사람들로 다시 바로 세워지기를 대한민국 정부에 바란다"고 호소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강씨에 대해 6개월 정도만 형을 상향시킨 것은 많이 아쉬운 면이 있고 대법원에서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점도 유족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다"며 "유족의 아픔을 끝까지 다 달래주지 못한 판결"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앞으로 이러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초급 지휘관 뿐 아니라 군 수뇌부가 불법 군기훈련으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판결문을 분석한 뒤 사건 당시 육군 총책임자였던 박안수 육군 참모총장에 대한 중징계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