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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장동혁은 부활한 혁명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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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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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경찰과 대한체육회 등 관계자들이 진입을 시도했던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찾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경찰의 물리력 동원한 건물 진입 시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16일 경찰과 대한체육회 등 관계자들이 진입을 시도했던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찾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경찰의 물리력 동원한 건물 진입 시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윤리를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둘로 나눴다. 신념윤리는 "내 뜻이 옳으니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고 말한다. 책임윤리는 "내 행위가 부를 결과를 내가 짊어진다"고 말한다. 거리의 혁명가가 쓰는 언어가 전자라면, 국회 안 제도권 정치인이 쓰는 언어는 후자일 것이다.

보통 정치는 신념윤리에서 책임윤리로 흐른다. 한 때는 사이다 발언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유럽 순방 때 정부에 대해 "주장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결과로 책임져야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심은 모르겠지만.

거리에서 신념을 외치던 사람이 권력을 쥐면 결과를 따져야 하는 상황은 정치 역사에서 유구한 것이다. 독일 녹색당의 요슈카 피셔는 68세대 거리의 투석꾼이었지만 외무장관이 되자 코소보 학살을 막기 위해 평화주의 신념을 접고 파병을 관철했다. 만델라는 대통령이 되자 기존 무장투쟁 노선을 버리고 백인들과 화해를 택했다. 신념이 책임으로 익어가는 흐름이랄까.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반대다. 흐름을 거슬러 오른다. 그는 한국 정치에서 이보다 더 '제도의 화신'에 가까운 이력이 있을까 싶은 판사 출신이다. 제도의 최고 권위라 할 수 있는 법의 문법에 통달한 자고, 국회의 룰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그는 당 대표가 되자 되레 거리로 나갔다. 선거일 직후 연일 잠실 시위 현장을 찾았고 직접 확성기를 들고 "재선거, 특검, 선관위 개혁"을 외쳤다. 의원 배지를 단, 심지어 제1야당의 대표 자리에 있는 정치인이 거리의 언어를 빌려 입은 것이다.
 
그가 외치는 것은 투표 용지 부족 사태가 일어난 일부 지역의 재투표, 제도 안의 일이 아니라 문제가 없던 곳까지 포함한 전국 재선거다. 엿새 간 입원을 마치고 가진 24일 기자회견의 첫 일성도 재선거였다. 현행 헌법과 선거법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라, 당내 소장파마저 "안된다는 것을 장 대표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재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은 부정선거론자들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이들의 요구를 끝까지 밀고 가면 헌정 질서 자체를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제도권의 화신은 이렇게 혁명가가 돼가는 중이다.

오, 그렇다면 이것은 장 대표의 혁명인가. 어딘가 어색하다. 단순히 정치의 흐름이 반대여서가 아니다. 거리의 혁명가는 적어도 자기 신념 수준에서는 책임을 졌다. 피셔는 전당대회에서 변절했냐며 비난하는 페인트 폭탄에 고막이 터졌지만 자기 노선을 끝까지 짊어졌다. 나름의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신념은 책임으로 인정받았다.

엿새 만에 퇴원해 당무에 복귀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엿새 만에 퇴원해 당무에 복귀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그러나 장 대표는 거리의 수사만 빌려오고 그 수사가 부르는 현실의 결과, 재선거의 천문학적 비용이라든지 위헌의 부담, 보수 세력을 고립시키는 부정선거 음모론과의 동조화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잠실의 순수한 시민들"을 몇 번이나 되뇌며 거리의 에너지를 기꺼이 빌리지만, 거리의 책임은 지지 않는 윤리적 무임승차랄까. "선거 패배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술책", "본인 선거였으면 재선거하자 했겠나"라는 반문이 같은 당에서 나오는 이유다. 선거가 공정하지 않고 전국 재선거가 사태를 푸는 최선이라고 믿는다면, 이 신념이 진짜라면 그 신념의 결과까지 떠안고 설명해 내야 한다. 제1야당의 대표라면 더더욱.

자신의 책임은 비워둔 채 광장의 순수만 호명하는 신념은, 혁명가의 신념이 아니라 정치꾼의 연기에 가까워 보인다. 거리에서 태어난 혁명은 국회 안에서 어쩌면 죽어야 하는 게 주어진 운명일 것이다. 혁명가의 신념은 정치인의 책임으로 승화해 죽어야 한다. 가짜는 거꾸로, 의사당 안에서 거리의 부활을 연기한다. 책임을 피하려 신념을 연기하며 산다. 장 대표는 부활한 혁명가인가, 아니면 혁명을 연기하는 배우인가. 진영이 바뀌더라도 마찬가지다. 선진 민주국가를 수립했다 자부하는 우리 정치가 끝내 물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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