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청 출범 첫날인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공소청에 현판이 붙어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류영주 기자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고(故) 김정구씨의 두 번째 재심 신청을 두고 공소청이 "한 차례 기각된 사안은 재심을 청구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씨가 재심 절차 중 사망해 동일 사유 재심 금지 조항을 적용받지 않음에도 기각 의견을 낸 것인데, 김씨 측은 대법원 결정 등 기존 판례에 전혀 맞지 않는 의견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평범한 어부에서 '간첩'으로…50년간 풀리지 않은 억울함
1976년 10월 19일 전북 군산경찰서가 작성한 김정구씨의 범죄인지보고서. 최정규 변호사 제공
14일 CBS노컷뉴스 취재에 따르면 전주지방공소청 군산지청은 김씨의 반공법 위반 사건 재심 청구를 두고 "한 차례 기각 결정이 있었기에 동일한 이유로 재심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기각 의견을 제출했다.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인 김씨는 북한에 납치됐다 돌아온 동료 어부가 전해준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수사기관에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 고문에 못 이긴 김씨는 거짓 자백을 했고, 국가로부터 반국가단체를 찬양했다는 누명을 써 징역 1년 6개월,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있다.
50여년이 지나 김씨는 "경찰이 영장 없이 자신을 구속했고, 고문을 하는 등 수사과정에서 위법한 사정이 있다"는 취지로 재심을 청구했다. 이에 전주지방법원은 "불법 구금과 고문을 했다는 증거가 없기에 재심 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한 공소청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한 차례 기각 됐다"는 공소청 의견…대법원 판례 등에 어긋나
지난 1월 29일 고 신충관 씨의 재심 무죄 기자회견에서 고 김정구 씨의 아내 박선례 씨가 "우리 남편도 평생 고통받으며 살다 가셨는데 재심이 기각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심동훈 기자
이러한 법원의 기각에 김씨는 즉시 항고했고 즉시항고도 기각되자 재항고에 나섰다. 김씨는 재항고 절차가 진행되던 중 사망했는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재항고 절차 진행 중에 재심 청구인이 사망하면 기각 여부의 확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심 청구 절차가 종료된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심청구 금지의 효과는 재심청구 기각결정이 확정된 경우에 발생한다. 즉 청구인의 사망으로 기각 결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료된 김정구씨의 재심 청구를 두고 "한 차례 기각된 청구를 두고 동일 이유로 재심을 청구할 수 없다"는 공소청의 주장은 판례와 배치된다.
다른 사건을 두고 법원이 내린 결정과도 어긋난다. 또 다른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故 서병호씨도 재항고 절차 중 사망해 재심 청구 절차가 종료됐다. 서씨의 경우 사망으로 인해 재심청구 금지 효과가 발생하지 않았고, 이후 그의 딸의 청구로 재심이 개시됐다.
이러한 공소청의 해석을 두고 김씨의 변호인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대법원 판례와 앞선 사례들을 모두 무시한 해석이다"고 비판했다.
본범은 무죄 받았는데 불고지죄만 유죄로 남아…"비상식적"
납북귀환어부 사건 재심 무죄판결을 두고 기뻐하는 피해자들.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연합뉴스공소청은 김씨의 재심 청구가 기각되어야 하는 이유로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공소청의 주장은 또 다른 기존 판례에 비춰보더라도 어폐가 있다.
형사소송법은 재심의 사유 중 하나로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되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김씨의 재심 청구서엔 그에게 북한에서의 일화를 전해줬다는 신명구씨가 지난 2025년 4월 3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미 다른 반공법 위반 사건에서도 공범의 무죄가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받은 바 있는 상황에서 신씨의 무죄로 김씨의 유죄를 입증하는데 쓰였던 진술의 증거능력이 배척됐으니 김씨의 재심 사유가 충분히 있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김씨와 같이 신명구씨에게서 북한에서의 일화를 들었다는 혐의로 기소된 신지우씨나 故신충관씨는 모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아 억울함을 해소했다.
그러나 공소청은 재심 사유를 두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것이 아닌 이미 확보된 증거의 증거 능력 등의 판단을 달리한 것일뿐으로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됐다고 볼 수 없다"며 기각을 요청했다. 신씨에게 무죄 선고를 내린 재판부가 임의대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최 변호사는 "앞선 판례를 통해서 공범의 무죄가 재심 사유가 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임에도 증거가 없다며 기각 요청을 한 것은 왜 검찰이 공소청으로 나뉘어졌는지를 입증하는 증거다"며 "본범인 신명구씨는 무죄가 확정됐는데, 단순히 신씨가 전한 일화를 전했다는 김씨가 유죄인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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