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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의문사…국정원‧기무사가 숨겨온 '검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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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장준하 의문사 사건'의 진상규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인은 지난 2013년 한 법의학자가 장 선생의 유골을 감식한 결과를 토대로 사실상 타살로 결론지어지긴 했지만 아직 공식적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누가 죽였으며, 배후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세 번이나 국가기구의 조사가 이뤄졌지만 진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이번에 네 번째 바통을 이어 받는다. 46년 만에 역사 속에 숨은 검은 그림자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장준하 의문사 배후를 밝혀라]②
사건 당일 보고서만 빠진 국정원 제공자료
현장에 나타난 보안부대장…기무사 자료제공 '0'
국정원‧안보지원사 "조사 적극 협조할 것"

▶ 글 싣는 순서
①살해된 장준하···2기 진화위 '배후' 밝혀야
장준하 의문사···국정원‧기무사가 숨겨온 '검은 그림자'
③장준하 장남 "마지막이란 각오로···"진상규명 호소
(계속)


고 장준하 선생이 사망한 경기도 포천 약사봉 일대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고 장준하 선생이 사망한 경기도 포천 약사봉 일대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고(故) 장준하 선생의 죽음이 박정희 유신·독재체제에 항거하다 '국가권력'에 살해됐다는 의혹 제기에 따라 50년 가까이 의문사로 남아 있다. 사건에 깊숙이 관여했을 '국가 정보기관'은 그동안 그 실체를 감추느라 급급했다.
 
21일 정부와 장준하기념사업회 등에 따르면 장 선생이 사망한 지난 1975년 8월 17일 이후 1·2기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이하 의문사위)와 1기 진화위 등 세 차례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진행됐지만 모두 '진상규명 불능'으로 끝났다.


세 번의 조사 모두 국정원과 기무사가 자료 제공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서 한계에 부딪혔다.
 

'사건 당일 보고서'만 빠진 국정원 제공자료

 
지난 1975년 8월 고 장준하 선생 사망 후 추모객들의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지난 1975년 8월 고 장준하 선생 사망 후 추모객들의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그나마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2기 의문사위 조사를 거치면서 국정원은 2천쪽 분량의 자료를 제공했다. 국정원이 제공한 자료들에는 당시 박정희 정권에 장 선생이 얼마나 '위험인물'이었는지 추정할만한 내용들이 수두룩했다.
 
또 당시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이하 중정)는 1964년 3월부터 1976년 12월까지 장 선생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동향을 날짜와 시간별로 기록했다. 중정이 작성한 장 선생의 행적일지를 열람한 고상만 의문사위 조사팀장은 "장준하의 '모든 것'이 기록돼 있었다"고 했다.
 
특히 1975년 3월 31일자 중정이 작성한 기밀문서인 '위해분자 관찰계획 보고서'에는 '장준하의 개헌운동 계획을 탐지해 공작 필요 시 보고 후 실시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보고서가 작성된 뒤 넉 달여 뒤인 8월 17일 장 선생은 운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정작 사건 당일의 보고 자료들은 내놓지 않고 있다.
 
고 장준하 선생 유해에 대한 정밀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고 장준하 선생 유해에 대한 정밀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장 선생 유골 감식 결과 사실상 타살이 확실해지면서 유일한 목격자였던 김용환씨(2017년 사망)의 실족사 주장은 탄핵됐다. 때문에 중정의 사건 당일 보고서는 김씨가 누구에게 어떤 지시를 받아 장 선생 죽음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장준하기념사업회 이준영 진실규명담당은 "목격담이 거짓으로 드러난 만큼 김씨는 용의자로도 봐야하는데 국정원 제시 자료만으로는 그의 행적 등을 되짚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현장에 나타난 보안부대장…기무사 자료제공 '0'

 
기무사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국정원에 비해 더욱 심각하다. 세 번의 조사 과정에서 기무사는 단 한 장의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다. 자료 요청에 항상 '존안 자료 없음'이라고만 답해 왔다.
 
2기 의문사위는 추적 끝에 사건 당일 약사봉 인근 105보안부대의 부대장이 현장에 나타났던 사실을 확인했다. 또 해당 부대장은 16절지 절반 분량의 영문 텔레타이프로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진종채에게 직보했다고 털어놨다. 진종채 보안사령관은 해당 보고를 받은 다음날 오후 이례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집무실이 아닌 서재에서 독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조사팀장이 16절지 반 분량의 영문 텔레타이프 문서가 기무사의 문서고에 보관돼 있을 거라 확신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문서는 내용에 따라 사건의 진실을 규명할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다.
 
고 전 조사팀장은 "적극적인 정보 공유만 됐었어도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조사원들이 자료 제공에 대한 강제 권한이 없는 만큼 진상 규명에 대한 관계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안보지원사 "조사 적극 협조할 것"

 
태극기 앞 고 장준하 선생의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태극기 앞 고 장준하 선생의 모습.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2기 진화위 조사 개시와 함께 두 국가정보기관은 조사에 전향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정원 관계자는 "의문사위에서 요청했던 장 선생 사망 관련 수사 및 동향 문건, 전직 직원 신원사항 등을 이미 제공해 왔다"며 "앞으로도 가능한 모든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했다.
 
국군기무사 역시 2018년 군사안보지원사로 탈바꿈한 이유가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의미라며, 진상규명을 위해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군사안보지원사 관계자는 "대면 설명을 요청받았지만 존안자료가 없는 사실 대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공권력에 희생된 부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 조사를 돕겠다"고 말했다.
 
이어 "5.18자료와 강제징집 녹화자료 등은 국가기록원에 이관했지만 장준하 의문사 관련 자료는 별도로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조사위원들이 방문하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개방, 열람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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