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면서 12·3 내란사태 이후 대외적 대응 여력이 크게 떨어진 우리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은 해당 수역에 부유식 구조물 '선란' 1호기에 이어 최근 2호기까지 설치했다. 이는 지난 2월 말 우리 해양조사선이 해당 구조물에 확인 조사차 접근하다 제지를 받고 대치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중국 측은 이 구조물이 심해 양식장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베트남, 필리핀 등 이웃국가들과 벌인 해양 분쟁의 전례에 비춰 영유권 주장을 위한 사전 포석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표적 사례가 남중국해의 스카버러 숄(Scarborough Shoal: 중국명 황옌다오, 필리핀명 파나타그 숄)이다. 이 모래톱 섬(沙洲)은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있지만 중국이 2012년부터 구조물을 설치하며 점령을 추진한 끝에 실효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선란 1·2호기 역시 지금은 양식장으로 포장했지만 향후 해양기지나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 폐시추선을 개조한 이 거대한 시설물은 헬리콥터 착륙장까지 갖추고 있어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정현욱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30일 보고서에서 중국의 전략에 대해 "작은 수준으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점진적으로 기정사실화하는 '살라미 전술'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심해 양식장이라 주장하지만…남중국해 등 전례 볼 때 의구심
다만 현재까지 드러난 중국의 행위만 놓고 볼 때는 국제법 위반이라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우선, 한중 어업협정의 경우 말 그대로 어업 활동에 대해서만 규율하기 때문에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유엔해양법협약 측면에서도 한중 양국 간 EEZ 획정이 이뤄져 있지 않아 적용에 한계가 있다. 선란 1·2호의 위치가 양국 EEZ가 중첩한 잠정조치수역이긴 하지만, 가상 중간선의 서측인 점도 권리 침해를 따지기 애매하게 만든다.
최종 경계 획정 전까지의 과도기간 중 당사자 간 최종 합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야 할 의무(자제 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하기 힘든 것이다.
심상민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30일 보고서에서 "현 상황에서 판단한다면 중국의 서해 구조물 설치 행위는 그 자체로는 한중 어업협정이나 유엔해양법협약 규정의 위반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주문하는 것과 같은 과잉대응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중국이 특유의 '회색지대 전술'로 우리의 주권적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경계했다. 서해에서 비슷한 구조물의 추가 설치가 지속적, 반복적, 중첩적으로 이뤄질 경우 유엔해양법협약의 '자제 의무'(제74조) 위반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중하되 中 발톱 보이면 단호히 대응…근본 해법은 양국관계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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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단계적 전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신중히 접근하되 중국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호히 대응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제사법기관 제소나 필리핀·베트남 등 유사입장국과의 연대, 맞불 놓기 식 서해 구조물 설치 등도 거론된다.
다만 점차적으로 기정사실화하는 중국의 살라미 전술을 감안할 때 외교적 항의와 대화는 당장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단 중국은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열린 제3차 한중해양협력대화에 비교적 성실히 응하며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정부는 서해에서 우리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해양 권익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입장 하에 앞으로도 적극 대응해나갈 것"이라는 원칙을 확인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법은 역대 최악의 한중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내달 초 한국의 차기 정부 향배를 예의주시하며 새로운 협력관계를 저울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연구소 라크빈더 싱 박사는 지난 1일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 기고문에서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안보는 지금 한중 양국의 선택에 달려있다"며 "중국의 다음 행보에 따라 이 지역이 새로운 참여 또는 대결 국면에 진입할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