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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환자에게 사랑 실천한 이 사람…믿음의 뿌리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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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종지기로 苦學…가가와 도요히코와의 운명적 만남

영광학원의 창업자이자 평생을 목회자로 교육자로 헌신한 이영식 목사는 큰 교회의 안락한 목회자 길을 버리고 칠곡 나환자촌으로 들어가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가 일본의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에서 영향받아 시작한 특수교육은 오늘날 대구대학의 중심이 됐다.

"은혜주셨으니 아들 목사로 만들겠습니다"··
방물장수 어머니의 약속
칠곡 나환자촌으로 간 이유 '사랑의 실천'
"멀쩡한 사람도 못 배우는데 미친 영감 아니냐"
이근용총장 "하나님이 대구대를 선물주셨다 생각"

영광학원 대구대 창업자 이영식 목사. 영광교회 내 전시관 촬영. 이재기 기자  영광학원 대구대 창업자 이영식 목사. 영광교회 내 전시관 촬영. 이재기 기자 
대구대가 한국 특수교육의 본산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고(故) 이영식 목사가 하나님을 영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나환자촌 전도'와 '장애인교육에 특화된 대학사업'에 평생을 바친 이유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CBS는 31일 대구대 영광교회 설립 80년 기념예배를 계기로 학교법인 영광학원 이근용 이사(대구사이버대 총장)와 특별대담을 갖고 그의 증조모에서 비롯된 가계의 믿음 여정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역 스토리를 들어봤다.
 
"은혜주셨으니 아들 목사로 만들겠습니다"…방물장수 어머니의 약속
 
대구대 본관 옆 동산에는 이영식 목사의 건학이념을 새긴 표석과 이 목사 흉상이 서 있다. 이념의 요체는 말씀의 전파와 사랑의 실천이고 그런 철학을 가진 인재를 키워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 도중 궁금증이 생긴 건 구한말과 일본 감정기를 살아내면서 어떻게 믿음에 이르게 됐을까 라는 점. 그래서 이 목사의 손자인 이근용 총장에게 '할아버지가 믿음에 이르게 된 경위'를 물었다.
 
#1. 그는 성주에서 방물장사를 했던 증조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증조 할머니가 아들(이영식)을 교육시키려고 방물장사할 때 전국 곳곳을 돌다 어느 추운 겨울 눈구덩이에 빠진 일이 있었어요. 아마도 당뇨병이 있었던 가봐요.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마침 지나가던 후평교회 장로님이 구출하게 됐죠"
 
생명의 은인으로부터 하나님 영접 권유를 받은 할머니는 감사한 마음에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고 뒤이어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하는 놀라운 일이 생겼다고 한다. 이 가정이 대대로 믿음의 가정으로 이어진 역사는 바로 이 순간 시작됐다.
 
이근용 총장은 "저희 증조할머니가, 그런 기적적인 은혜를 주셨으니까 아들을 목사로 만들겠다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소원대로 아들은 서문교회 종지기를 하며 돈을 모아 고베신학교에서 목사안수를 받는다. 서문교회에서 6개월간 목회 했지만 어느날 목사직을 내려놓고 교회를 떠나는 반전이 생긴다.
 
칠곡 나환자촌으로 간 이유는 '사랑의 실천'

#2. 대구대 창업자 이영식 목사가 목회를 뿌리치면서 남긴 한마디는, "내가 이렇게 하기 위해 목사가 된 게 아니다"는 선언이었다. 그 길로 그가 향한 곳은 대구 외곽의 나환자 집단수용소였다.(칠곡군 지천면) 나환자촌에서 교회를 설립한 이 목사는 환자들과 동고동락했다.
 
오랜 기간 나환자와 숙식을 함께하다 보니 어느날 눈썹이 빠지는 증상이 찾아와 덜컥 겁이 났다. 혹 감염된 건 아닐까? 칠곡의 파티마병원 진단 결과는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생긴 증상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손자인 이근용 총장은 과거를 회상하며 "할아버지는 나환자가 주는 계란을 곧잘 받아드셨지만 저는 차마 먹을 수가 없었지요"
 
어린 시절 낮은 곳으로만 임하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선택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감이 됐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할아버지는 그때 하나님 말씀의 (사랑을) 실천하신 것 같아요. 교회 목사로 현실에 안주했다면 이 학교가 있었겠나 싶습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대구대학을 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영식 목사의 인생여정에 강한 영향을 미친 이는 '일본의 성자'로 불린 가가와 도요히코. 부모를 어려서 잃고 선교사로부터 받은 성경에 이끌려 중생한 도요히코는 의회주의자, 평화주의자로 전후 일본의 정신적지주였다. 미국언론이 그를 '가가와 간디'로 칭했고 1955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이영식 목사가 대구대 건학이념으로 '한 사람은 만인을 위해, 만인은 한 사람을 위해'로 선택한 것도 그의 영향이 컸다.

가가와 요시히코. 영광교회 전시관 사진 촬영. 이재기 기자 가가와 요시히코. 영광교회 전시관 사진 촬영. 이재기 기자 #3. 도요히코의 고베 빈민굴 사역에서 영감을 얻어 특수(장애인)교육에 나서다. 아들 이태영 총장도 메이지중학 재학 시절 가가와와 교유하며 깊은 영향을 받았다. 할아버지(창업자)는 특수교육을 런칭하고 2대총장은 가업을 심화발전시키는 씨앗이 일본 성자(聖者)로부터 잉태된 것이다.
 
"멀쩡한 사람도 못 배우는데 미친 영감 아니냐"

하지만 특수교육의 길은 가시밭길. 이근용 총장은 "1946년 대구 대명동에 교회와 특수학교가 함께 세워졌지만, 6.25이후 비장애인도 교육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특수교육을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했어요. 심지어 비장애인도 못 시키는데 미친 영감 아니냐고 했습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우물을 팠기 때문에 오늘날 대구대학이 된 게 아니냐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1956년 대구대학이 생기고 특수교육과가 한국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졌어요"

대구대 학생들과 영광교회 신자들이 8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고 있다. 영광교회 제공 대구대 학생들과 영광교회 신자들이 8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고 있다. 영광교회 제공 
대구대의 뿌리인 영광교회는 2026년으로 80주년을 맞아 이날 경산 하양캠퍼스 내 교회당에서 80년 기념예배를 드리며 다가오는 100년.200년의 발전을 다짐하고 창업자의 귀한 창학이념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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