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 가입자가 15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노무제공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빠르게 확대됐지만, 정작 이들의 목숨을 지킬 산업재해 예방 체계는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2년간 고용노동부가 노무제공자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적발한 사업장은 232곳에 그쳤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은 크게 늘었지만 예방·감독 체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0만 명 보호한다더니"…2년간 적발은 232곳
24일 CBS노컷뉴스가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노무제공자 대상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및 감독 실적' 자료에 따르면, 2024~2025년 2년간 노동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관련 산업안전보건법(제77·78조) 위반으로 적발한 사업장은 2024년 104곳, 2025년 128곳 등 총 232개소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과태료 부과 건수도 2024년 101건, 2025년 137건 등 총 238건에 그쳤다. 노동부가 한 해 감독하는 사업장이 5만 개 정도이고, 기획감독 한 차례에도 수백 개 사업장에서 수천 건의 위반 사항이 적발되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이다.
특히 이들 적발 건수는 노무제공자를 대상으로 한 별도 감독의 결과가 아니다. 일반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지도·감독 과정에서 산안법 제77·78조 위반으로 분류된 사례들만 전산에 집계된 것이다. 노무제공자 규모와 비교하면 예방 행정이 현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77·78조라는 좁은 문
연합뉴스이처럼 감독 실적이 제한적인 배경에는 태생적인 법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사망 사고 이후 산안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2020년부터 특수고용 노동자도 처음으로 산안법 체계 안으로 편입됐다.
그러나 시행 직후부터 노동계에서는 이른바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는 산안법 전체가 적용되는 반면, 노무제공자에게는 사업주와 플랫폼 운영자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규정한 제77조와 제78조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거대한 산안법 울타리 안에서도 노무제공자는 사실상 두 개 조항에만 갇혀 있는 셈이다.
적용 대상 역시 제한적이다. 제77조 적용 대상은 대통령령이 정한 14개 직종으로 한정된다. 택배기사와 퀵서비스기사, 대리운전기사, 일부 화물차주 등이 포함되지만 모든 노무제공자가 보호받는 것은 아니다.
화물차주의 경우에도 컨테이너·시멘트·철강재·위험물질 운송 등 일부 유형만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안전보건교육 의무가 적용되는 직종은 이보다 더 적은 9개 직종에 불과하다.
결정적으로 책임의 무게가 다르다. 근로자가 사업주의 안전조치 미이행으로 사망할 경우 산안법상 형사처벌(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치사)이 가능하지만, 제77조가 적용되는 노무제공자에 대해서는 대부분 1천만 원 이하 과태료 규정만 존재한다.
다만 노무제공자 역시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보호 대상인 '종사자'에 포함돼 원칙적으로는 경영책임자 처벌이 가능하다.
문제는 현실이다. 중처법을 적용하려면 통상 산안법상 안전조치 의무 위반이 먼저 인정돼야 하는데, 노무제공자에게는 적용 조항 자체가 제한돼 있어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 관계자는 "특수고용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별도 감독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위험 사업장 감독 과정에서 근로자와 특고 종사자가 함께 있는 경우 법 위반 여부를 전반적으로 점검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올해 감독 물량을 지난해 5만2천 개 사업장에서 9만 개(노동 4만·산업안전 5만) 수준으로 확대하고 노동·산업안전 통합감독도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감독 물량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무제공자를 제한적으로 보호하는 제77·78조 체계를 그대로 둔 채 감독만 늘려서는 구조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로와 앱으로 옮겨간 위험…예방 체계는 그대로
예방망이 제자리인 사이 산업재해의 위험 지형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 산업재해의 중심이 건설현장과 제조공장이었다면 최근에는 물류와 배송, 플랫폼 노동 영역으로 위험이 이동하고 있다. 위험의 중심축이 굴뚝에서 도로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위로 확대된 것이다.
실제로 이번 연속기획 취재 결과 추락 위험은 건설현장 비계에서 화물차 적재함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 사망 상당수는 사업장 밖 도로 위 교통사고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곧 사고의 폭발적 증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제도권 밖에 있던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체계 안으로 편입되면서 비로소 통계에 포착된 측면도 존재한다.
실제로 연도 말 기준 노무제공자 산재보험 가입자는 2023년 119만 3801명에서 2025년 149만 218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노동부 역시 물류 산업 확대와 종사자 증가 등의 영향이 함께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있다. 산재보험 가입자가 150만 명 규모로 확대되는 동안, 이들을 대상으로 한 예방·감독 체계는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신분' 아닌 '위험' 중심으로…산안법 패러다임 바꿔야"
전문가들은 이제 산업안전보건 정책의 기준을 '신분'이 아닌 '위험'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재보험은 전속성 요건 폐지를 통해 여러 업체와 계약하는 노무제공자까지 보호 범위를 넓혔다. 반면 산안법은 여전히 직종과 계약 형태를 기준으로 적용 대상을 제한하고 있어 예방 체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강태선 교수는 "법의 패러다임을 근로계약 중심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실질적 책임 관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당장 강한 처벌 조항을 두지 않더라도 배달 플랫폼이나 물류사업자에게도 '플릿 세이프티(Fleet Safety·차량 안전 관리)' 같은 안전을 위한 포괄적 예방 의무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발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무제공자 사고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영세 사업장에 대한 지원 확대도 과제로 꼽힌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최명기 교수는 "영세 사업장은 단속이나 점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국비 지원과 기술 지원, 안전 컨설팅 등을 확대해 실질적인 예방 역량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국토교통부, 경찰청, 배달 플랫폼 8개 사와 '종사자 안전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한편, 플랫폼 운영사와 관련 단체의 안전보건 활동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노무제공자 사고성 재해 예방 사업'을 운영 중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내년에는 사업 개편과 예산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며 "플랫폼 운영자들이 업무용 앱을 통해 사고 사례와 예방 대책을 제공하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