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1일 시행을 앞둔 가상자산 과세를 두고 정부의 미묘한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불과 일주일여 전만 해도 "내년부터 과세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고 답했지만,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과세 유예를 공식화한 것은 아니지만, '예정대로 시행'이라는 기존의 명시적 표현과 비교하면 답변의 결이 달라진 것이다.
11일 국회 등에 따르면 이 부총리는 지난달 28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자산 과세를 시행하는 방침에 변함이 없는지를 묻자 "현재 세법상 이미 내년부터 과세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고 답했다.
국세청의 관련 고시와 관련해서도 "최대한 서둘러서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이 부총리의 답변은 현행 세법에 따라 가상자산 과세를 내년부터 시행하는 것을 전제로 후속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이 부총리는 이보다 앞선 9월 15일 인사청문회에서도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 필요성을 제기한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의 질의에 "2024년 국회 논의 후 2027년 시행하는 것으로 시간을 미뤄놓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상자산 투자자의 상당수가 소액 보유자이고 기본공제 250만원을 감안하면 실제 세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출발하는 게 충격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말했다. 2027년 1월 시행을 전제로 한 답변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난 6일 열린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서는 답변의 결이 달라졌다.
이 부총리는 김상훈 의원이 내년 가상자산 과세 시행 여부를 묻자 "국회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의견과 함께 전문가와 업계 등의 다양한 이해관계에 대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해외 거래소와 탈중앙화거래소(DEX), 탈중앙화금융(DeFi) 등을 통한 거래를 추적·입증할 과세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세를 시행할 경우 국내 시장 위축과 자금 유출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부총리는 김 의원이 보다 신중하게 판단해 달라고 당부하자 "유념해서 하겠다"고 답했다.
지난달 28일 "내년부터 과세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고 밝혔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에는 '예정대로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명확하게 재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연합뉴스가상자산 과세에 따른 세수 규모 파악에도 어려움이 있다.
이 부총리는 가상자산 과세로 얼마의 세수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는지를 묻는 김 의원의 질의에 "굉장히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사실 있다"며 "과세를 하려면 일단 신고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내년부터 신고받게 돼 있고 그래야만 추정이 된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세수 규모조차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과세를 강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이 부총리는 다시 "다양한 의견을 좀 더 폭넓게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부총리의 연이은 '의견 수렴' 답변을 정부의 과세 유예 방침으로 해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특히 이 부총리는 유예 과정에서 지적했던 조건들이 충분히 준비됐다면 예정대로 시행하는 것이 국회의 의사결정 취지 아니냐는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의 질문에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다른 의견이 있다면 추가로 검토해서 살펴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총리의 발언은 가상자산 과세를 위한 행정적 준비를 진행하고 있지만, 과세 시행 자체에 대해서는 국회와 전문가·업계 등의 의견을 추가로 검토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 부총리는 국감에서 과세 시스템이 준비돼 있다는 취지의 답변과 함께 스테이킹·채굴·에어드롭·DeFi 등과 관련한 과세 기준을 담은 국세청 고시를 조만간 발표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가상자산 과세가 이미 여러 차례 유예된 만큼 추가 유예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유예의 주요 이유였던 과세 인프라와 소득 포착, 입법상 미비 등이 상당 부분 보완되고 있는 만큼 예정된 시행을 또다시 미루는 것은 법적 안정성과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제대 김현동 경영학과 교수는 "가상자산 과세는 소득이 있으면 과세한다는 조세 원칙에 부합하고, 과거 유예 당시 제기됐던 과세 인프라와 입법상 미비도 상당 부분 보완되고 있다"며 "해외 거래소를 통한 거래는 거래정보 교환협정 등을 통해 과세 집행력이 상당히 확보돼 있고 스테이킹, 에어드롭 등 세부적인 과세 문제는 곧 확정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미 법으로 시행 시기가 정해져 있고 세 차례나 유예된 상황에서 여론을 더 살펴보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세제를 관장하는 재정당국 수장으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전했다.
관건은 정부가 이번 '의견 수렴'을 실제 정책 변경 검토로 이어갈지, 아니면 예정된 시행을 앞두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확인하는 절차로 마무리할지다.
가상자산 과세는 애초 2022년 1월 시행 예정이었지만 2023년 1월, 2025년 1월로 두 차례 연기된 데 이어 2024년 말 다시 2027년 1월로 미뤄졌다. 시행까지 석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결론과 함께 연말 세법 논의 과정에서 추가 유예 여부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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