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포럼 참가자들이 텀블러를 손에 들고 지속가능한 삶의 실천을 다짐하고 있다. 전남CBS▶ 글 싣는 순서 |
① "올 여름 전기세 5만 원…지구를 위한 응답이에요" ② "기후위기, 혼자 아닌 함께"…순천생태학교 '첫 발' ③ "이렇게 하면 바뀌겠죠" 효천고 기후환경 동아리 '센트럴' ④ 뚜벅이 환경공학자의 '자동차와 헤어질 결심' ⑤ "지구를 향한 작은 발걸음, 순천에서도 울리다" ⑥ 냉난방 없이도 가능한 삶, 순천 사랑어린학교가 살아가는 법 ⑦ 기후위기 대응, 급식에서 시작하다 ⑧ 버려질 뻔한 병뚜껑, '플라스틱 대장간'에서 변신하다 ⑨ "노플라스틱 육아, 가능해?" 환경 덕후 엄마의 실천법 ⑩ "손은 아프지만, 지구는 웃는다" 종이팩을 살리는 카페들 ⑪ '지금 바로 여기'…작은 극장에서 시작된 기후 연대 ⑫ 텀블러 500개, 쓰레기는 바나나 껍질뿐 (계속) |
"가져오신 텀블러를 높이 들어 주세요!"
사회자의 외침에 5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일제히 텀블러를 들어 올렸다. 지난 8일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에서 열린 제4회 순천에코포럼은 이렇게 이색적인 장면으로 시작됐다. 강당 안은 잠시 동안 텀블러의 숲이 됐다.
'제6차 생명 대멸종과 그리스도교 영성'을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내용 못지않게 운영 방식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강연과 간식, 참여와 실천을 일치시키려는 시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진짜 친환경'의 현장을 만들어냈다.
간식 테이블 위에는 바나나 30손과 백설기 떡 500개가 전부였다. 커피나 음료는 제공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각자 가져온 텀블러에 정수기 물을 받아 마셨다. 텀블러 지참은 사전에 공지됐고, 만약을 대비해 다회용 컵 150개를 순천시에서 지원받았다. 이 중 실제 사용된 컵은 50개가 채 되지 않았다.
참가자들이 간식으로 준비된 바나나와 떡을 하나씩 받아가고 있다. 전남CBS점심 도시락은 쓰레기 배출을 줄이기 위해 제공되지 않았다. 대신 주최 측은 지역화폐를 지급해 인근 식당을 이용하도록 안내했다. 이는 환경 보호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고려한 선택이었다.
이전 포럼들과 비교하면 변화는 더 또렷하다. 1회 행사에는 일회용 도시락이, 2회에는 종이 케이스 간식이, 3회에는 포장된 떡과 사탕이 제공됐다. 쓰레기도 그만큼 적지 않았다. 반면 이번 포럼은 '제로 웨이스트'에 가까운 방식을 실험하며 실천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행사 후 남겨진 쓰레기는 바나나 껍질, 백설기 포장지, 종이 상자 몇 개뿐. 일회용 플라스틱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종이는 폐지로, 과일 껍질은 음식물쓰레기로 철저히 분리됐다. 5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남은 쓰레기는 50L짜리 봉투 하나가 전부였다. 이 간결한 결과가 포럼의 메시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줬다.
오현주 경영기획국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친환경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라며 "이번 포럼은 주제뿐 아니라 운영 방식에서도 그 취지를 실천해보려 했다"고 말했다.
최광선 에코포럼 디렉터는 "포럼을 준비할 때마다 가장 큰 과제는 '실천'이었다"며 "이번에는 다회용기와 텀블러 사용을 통해 쓰레기를 눈에 띄게 줄일 수 있어 의미 있었다. 이런 경험이 포럼에만 그치지 않고 각자의 삶 속 작은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에코포럼에서 배출된 쓰레기는 바나나 껍질, 떡 박스, 50L 쓰레기봉투 하나뿐이었다. 전남CBS
현장에 함께한 참가자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청주에서 온 김선희 씨는 "텀블러를 챙기는 일이 여전히 번거롭긴 하지만, 이제는 꼭 필요한 일이 됐다"면서 "기후위기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현실이 된 만큼, 작은 실천이라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주에서 온 이성호 씨는 "다회용 컵을 처음 써봤는데, 세척까지 된다니 편리했다"며 "앞으로 이런 시스템이 모든 행사에 기본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강연 속 한마디에 가장 큰 위안을 받았다는 임명숙 씨는 "두렵지만 기후위기에 맞서려면 이제는 행동할 수밖에 없다"며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