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러시아 전승절 80주년 기념식이 막을 내린 가운데, 행사에 초청받은 한국 정부는 러북 군사협력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불참을 택했다.
전승절은 1945년 5월 9일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항복을 받아낸 것을 기념하는 날로 러시아 최대 국경일로 꼽힌다. 러시아와 우호 국가들의 정상들이 모여 '반서방 연대'를 다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지난 9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 앞 붉은광장에서는 1만 1천여명의 러시아 병력이 모여 행진을 진행하며 국방력을 과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로베르토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총리 등 27개국 정상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심을 모았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스크바를 방문하지 않았다. 다만 이날 주북러시아 대사관을 딸 주애 양과 함께 방문해 "불패의 동맹관계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일부 북한군 대표단도 열병식을 참관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들에게 "당신의 전사들에게 좋은 일들이 있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올해 전승절에는 한국 정부도 초청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주러 한국대사관이 지난 7일 러시아로부터 전승절 행사에 초청하는 공한을 접수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참석 여부는 종합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날 열병식에 이도훈 주러 한국대사는 최종적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한국에 전승절 초청장을 보낸 것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처음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한국이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자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분류해 초청장을 보내지 않아왔다.
다만 올해 전승절이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중시하는 '정주년(5년,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 행사인 점을 기념해 한국을 비롯한 비우호국도 초청 대상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러 군사협력 전에는 정주년에 해당하는 러시아의 전승절마다 고위급 인사가 참석했다. 2005년 60주년 행사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15년 70주년 행사에는 윤상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2020년 75주년엔 정상급에서 초청을 받았지만 코로나19를 이유로 불참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군 파병 등 북러 군사협력이 공식화된 시점에서 한국의 전승절 참석이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과 대러시아 제재가 지속 중이기 때문이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도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등 불법 군사협력이 지역 및 세계 평화와 안보를 위협한다고 강력 비판했다.
다만 정부는 한러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이 있는 만큼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 참석 동향을 주시하며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식적으로 불참 사실을 대내외에 알리지 않은 것 또한 향후 한러관계를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