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캠프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황진환 기자국민의힘 지도부가 강행했던 초유의 '대선 후보 교체' 시도가 무산됐다. 연일 심야 단일화 협상과 비대위, 당 선관위를 잇따라 열며 '한덕수로의 단일화'를 시도했던 당 지도부는 사과했다.
대선 후보 지위를 회복한 김문수 후보는 즉시 빅텐트를 세워 '반(反) 이재명' 전선을 구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단일화 과정에서 드러난 당 지도부와 김 후보 측 간의 갈등이 봉합돼 대선 과정에서 시너지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초유의 후보 교체 강행했던 지도부, 왜
국민의힘 지도부가 초유의 대선 후보 교체를 결정하게 된 건 '김문수-한덕수 단일화'가 대선 후보 등록일(10일) 전까지 끝나지 않으면서다. 지도부는 양측이 단일화를 이루는 데드라인을 9일 자정으로 정했다. 여론 조사에서 우위에 있는 한덕수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를 상정한 날짜였다.
무소속으로 있던 한 후보로 단일화를 하려면 그 전까지 국민의힘 당원으로 가입해야 하는 등 상당한 절차가 필요했다. 경선에서 한 후보와의 단일화를 강조했던 김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지도부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면서 지도부의 단일화 스텝은 꼬였다.
김-한 후보 측은 단일화 협상을 몇 차례 이어갔지만 이견을 좁히진 못했다. 결국 당 지도부는 9일 '후보 교체' 작업에 돌입했다. ①후보 선호도 여론조사를 하고 의원총회로 의원들의 의견을 모은 다음 이튿날 새벽까지 ②당 선관위와 비대위를 연달아 열어 김 후보의 대선 후보자 자격을 박탈했다.
이후 ③한 후보가 국민의힘으로 입당했고 대선 후보 등록 서류를 제출한 다음 ④비대위는 한 후보를 대선 후보로 의결했다. ⑤이후 전 당원을 대상으로 '한 후보 선출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한 뒤 ⑥전국위원회를 열어 대선 후보를 최종 확정한다는 계획이었다.
한덕수 전 총리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한 전 총리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김덕수 홍덕수 안덕수 나덕수 그 어떤 덕수라도 되겠다"고 말했다. 황진환 기자
10일 새벽 △한 후보가 입당 이후 한 시간 만에 대선 후보로 등록한 사실 △비대위가 한 후보로 대선 후보를 의결한 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점이 알려지자 당 안팎 여론은 들끓었다. "마치 12.3 비상계엄과 흡사한 느낌(조경태 의원)"이라거나 "새벽 기습 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통령 후보 강제 교체"(안철수 의원) 등 당내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김 후보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국민과 당원의 선택을 받아 정당하게 선출된 저 김문수의 대통령 후보 자격을 불법적으로 박탈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 후보자 취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다. 심문에 직접 참석해 "당이 새벽에 후보자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선출을 취소하고 다른 후보자를 뽑았다"고도 말했다.
당 지도부도 이에 맞서 후보 교체 이유를 설명하며 대응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뼈아픈 결단을 내렸다"며 "김 후보는 지도부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과 거짓말을 반복하며 갈등을 일으켰다"고 맞받았다.
가처분 결과 향방 가를 줄 알았는데…여론조사로 교체 무산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김 후보가 낸 가처분 결과에 따라 최종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당원 투표 결과가 대선 후보 향방을 갈랐다. 당원 투표에서 '후보 교체' 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근소한 차이로 많이 나왔다고 한다. 결국 심야 비대위에서 통과된 후보 교체 안건은 부결됐다.
후보 교체를 주도한 권 위원장은 사과 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너무 안타깝지만 이 또한 제 부족함 때문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비대위원장을 포함해 비대위원 모두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당장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 비대위원장만 사표를 내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대선후보 재선출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국민의힘은 당장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김 후보로 대선 후보를 등록할 예정이다. 신동욱 수석 대변인은 "현실적으로 당장 후보로 등록해야 하고 다음 주부터 선거 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후보로 등록하게 되면 후보 뜻에 따라 (직이) 교체되는 분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식 후보 등록을 앞두고 후보 교체를 거듭하는 혼란상을 보이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선 후폭풍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한동훈 전 대표는 "당원들이 직접 친윤들의 당내 쿠테타를 막아줬다. 그렇지만 당은 이미 깊은 상처를 입었고 당원들은 모욕당했다"면서 "당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간 사람들은 모두 직함을 막론하고 즉각 사퇴하고 제대로 책임져야 한다"며 지도부를 겨냥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맞서 범보수 진영이 연대해야 한다는 '반(反)이재명 빅텐트' 전략도 단일화 실패와 국민의힘의 후보 교체 논란으로 차질을 빚게 됐다. 김 후보 측은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 파열음을 냈던 당 지도부와의 갈등 정리에도 나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