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9일 서울시내 한 영화관에 걸린 '암살자(들)' 포스터. 황진환 기자당신이 영화 투자자라고 가정해 보자. 관객이 많이 들수록 돈을 버는 입장이라면, 특정 진영만 환호할 영화를 만들겠는가 아니면 정치적 지향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 것인가. 제작비가 무려 190억원이나 든 것으로 알려진 영화라면, 더더욱.
돈, 돈, 돈! 느낌표를 몇 개나 더 붙여도 모자랄 만큼 영화판에서 돈은 절대적이다. 돈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영화라 한들 투자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자본에는 뜻이 없고 그저 기대값만 있다. 이창동이라는 거장 감독에 A급 스타들이 줄지어 출연하는 영화 '가능한 사랑'조차 흥행을 이유로 국내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수작임에도 돈에 대한 기대치가 약해 만들어지지도 못할 뻔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투자자에겐 돈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희대의 논란을 빚고 있는 영화 '암살자(들)'을 보자. 2023년 '서울의 봄'이 그랬듯 현대사의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는 이미 검증된 상품 장르다. 여기에 더해 74년 육영수 피격 사건은 비극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소요는 물론, 문세광의 자백과 한국 수사본부의 발표, 일본 수사 결과, 주한 미국대사관의 보고가 엇갈려 정리되지 않은 정보까지 품고 있어 영화화하기 좋은 소재다. 개봉일은 추석 연휴 직전이었고, 감독은 허진호, 주연은 유해진·박해일·이민호다. 장르는 미스터리 추적극. 이 조합이 겨냥한 건 진영이 아니라 극장 의자의 숫자다. 그렇다, 또 돈 얘기다.
'암살자(들)'이 참으로 '깨어있는' 영화거나 '좌익' 영화, 혹은 '북한과 내통하는 자들'의 영화로 기능한다는 주장에 무색하게도, 영화판의 자본 상황은 그런 논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심지어 용납조차 하지 않는다. '깨어있는 자들이 만든 좌익 영화'라는 게 만약 존재한다 해도, 190억짜리 제작비가 들어갔다면 그건 이념이 좋아서가 아니라 회수가 가능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암살자(들)'의 탄생과 제작 환경, 개봉까지의 결정을 고려할 때, 어떤 의도나 이념보다는 돈이 더 많은 역할을 했다고 보는 쪽이 훨씬 합리적이다.
신자유연대와 벨라도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4일 서울 성북구 배우 유해진 씨의 자택 인근에서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영화 '암살자(들)' 제작사와 배우를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그러나 '암살자(들)'이 영화 바깥에서 이념 얘기로 시끄러워지는 동안, 무대인사와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이 취소됐고 제작사는 홍보를 멈춰야 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투자자 명단과 자금 내역을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제작사는 아니면 말고식 중국 자본설까지 진지한 자세로 부인해야 했다. 돈 버는 것 말고는 별 의지가 없는 돈의 행방에 '너 의도가 뭐야?'라는 삿대질이 쏟아지는 셈이다.
이 삿대질의 대상은 투자자를 넘어 출연진은 물론 추천평을 남긴 이들에까지 확대됐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은 창작자와 배우 개인의 신상 공개, 가족 위협, 생업 방해가 정당한 비판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성명을 냈다. 이쯤 되면 삿대질이라는 표현도 약해 보이는 수준이다. 투자자의 손실은 손익분기점으로 계산되지만 이런 비용은 어디에도 계산되지 않는다. 경제학은 이를 외부효과라 부르던가. 돈에는 뜻이 없다고 했지만, 논란의 비용은 이 와중에 만만한 상대 쪽으로 흐른다.
1974년 8월 15일 장충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는 일은 정당하다. 그 답은 사료와 역사학이 가릴 일이다. 영화가 왜 만들어졌고 왜 팔리는지는 장부가 훨씬 더 잘 말해줄 것이다. 둘을 한 접시에 담는 순간, 영화는 사라지고 전선만 남는다. 자본주의의 모범생이 되고자 수십 년을 분투해온 이 나라에서, 돈의 논리가 이념의 소음에 뒤덮이다니 가당찮은 일이다. 이 소란에서 가장 이념적이지 않은 존재, 영화 자신은 그저 외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팔려야 한다! 손익분기점까지 얼마 남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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