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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헤어지자고 말한 뒤에도 폭력은 끝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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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10-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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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경감의 사기(詐欺) 프로파일링]
스토킹


누군가에게는 연인과의 이별이 관계의 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두려움의 시작이다. 헤어지자는 말에 분노하고, 수십 통의 전화를 걸고, 집 앞에서 기다리거나 직장까지 찾아오는 사람. 처음에는 미련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어느 순간 협박과 감시, 폭력으로 변하기도 한다.

경찰에 접수된 신고 통계는 이러한 위험이 결코 드문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스토킹 신고는 2021년 1만4509건에서 2025년 4만4687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교제폭력 신고도 같은 기간 5만7305건에서 10만5327건으로 늘었다. 2025년 스토킹과 교제폭력 재신고 가운데 약 78%는 세 차례 이상 신고한 사례였다.

물론 신고 증가가 실제 범죄 발생 증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신고가 활성화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신고가 보여주는 현실은 분명하다. 한 번의 신고만으로 끝나지 않는 폭력이 있고,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위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피해자는 왜 위험한 관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까

관계성 범죄를 이해할 때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피해자의 심리다.

폭력적인 관계에 놓인 사람은 언제나 상대방을 두려워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폭력과 위협이 반복되는 중에도 상대방이 잘해 주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이번에는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오랜 시간 함께한 관계라면 가족과 지인, 경제적 문제까지 얽혀 있어 관계를 정리하는 일도 쉽지 않다.

특히 가해자가 사과와 폭력을 반복하면 피해자는 상황을 판단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심하게 화를 내던 사람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피해자는 그 말에 기대를 걸게 된다. 그러다 폭력이 반복되면 자신이 조금 더 잘 대처했어야 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이때 주목할 심리적 현상 중 하나가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다. 보상이나 애정이 불규칙하게 주어질 때 사람은 오히려 그 관계에 더 강하게 매달릴 수 있다. 언제 다시 다정한 모습을 보여줄지 모른다는 기대가 관계를 끊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모든 피해자가 이러한 심리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제적 의존, 주거 문제, 자녀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도 크다. 따라서 피해자가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탓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스토킹과 교제폭력의 또 다른 특징은 친밀한 관계가 소유와 통제의 대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가해자는 상대방이 헤어지자고 하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뜻대로 관계를 끝낼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연락을 거부하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배신당했다고 여긴다. 상대방에게는 관계를 끝낼 자유가 있지만, 가해자는 그 결정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처럼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에는 거절을 견디지 못하는 심리, 상대방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태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랑과 통제를 구별하는 일이다.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하고, 누구를 만나는지 간섭하며, 연락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협하는 행동은 사랑의 표현이 아니다. 집착의 범위를 넘어 상대방의 자유와 경계를 침해하는 통제 행동이다. 더구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세 번의 신고가 말해주는 것

지난해 스토킹과 교제폭력 재신고 가운데 세 차례 이상 신고한 비중이 78%에 달했다는 경찰청의 통계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반복 신고가 모두 동일한 방식의 폭력이나 피해 신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 자체는 위험을 평가하는 중요한 단서다.

스토킹 피해자는 가해자의 반복적인 연락과 미행, 협박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처음 느꼈던 두려움에 익숙해지거나 경계심이 무뎌질 수 있다. 신고를 해도 스토킹이 멈추지 않거나 가해자의 행동이 달라지지 않으면, 도움을 요청해도 소용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반복해서 신고한다고 해서 모든 피해자가 무력감에 빠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피해를 멈추기 위해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적극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신고 횟수만으로 피해자의 심리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반복되는 신고는 그만큼 위험이 계속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승환 경감의 조언

스토킹과 교제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이유로 사적인 다툼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가해자는 피해자의 생활 반경과 인간관계, 주거지 등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정보가 통제와 보복에 이용되면 피해자는 일상생활 전체에서 위협을 느낄 수 있다.

피해를 겪고 있다면 먼저 자신의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 이별 의사를 밝혔는데도 반복적으로 연락하거나 찾아오고, 협박하거나 감시하는 행동이 이어진다면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만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문자와 통화 기록, 협박 메시지 등은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보관하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상황을 알리는 것이 좋다. 위험이 느껴진다면 경찰에 신고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112를 이용할 수 있다.

주변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다. 피해자가 왜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는지 묻기보다 지금 안전한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야 한다. 피해자의 선택을 비난하거나 섣불리 가해자와 직접 대면하는 행동은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안전한 지원 체계와 연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관계는 끝날 수 있다. 사랑이 식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별을 원할 수도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택의 자유다. 그러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위협하고 일상을 무너뜨리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내 곁에 붙잡아 두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방의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감정이 폭력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헤어질 자유를 빼앗는 순간, 사랑은 통제가 되고 관계는 범죄가 된다.

이승환 경감(경찰청 치안정보국), '사기 프로파일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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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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