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휴대폰 텔레그램에 "~~주식 연구소"라는 낯선 주식 투자방 알림이 뜬다. 내가 신청한 적도, 방에 있는 사람들 중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방 안에는 수십 명이 모여 있고, 누군가는 오늘의 추천 종목을 묻고 다른 누군가는 수익을 인증한다. "이번 주에만 30% 수익을 올렸습니다." "전문가님 덕분에 손실을 만회했습니다." 대화는 자연스럽고 분위기는 활기차다. 처음에는 잘못 초대된 방이라고 생각해 나가려 하지만, 연일 올라오는 수익 인증과 전문가의 투자 분석을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한번 따라해 볼까?'
사실 이 방은 우연히 초대된 곳이 아닐 수 있다. 투자 전문가를 사칭한 사기범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미끼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투자 정보를 나누는 척하며 신뢰를 쌓고, 어느새 사람들의 돈과 판단력을 노린다. 원치 않게 초대된 투자방이 어느 순간 스스로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충분한 신뢰가 형성됐다고 판단하면 운영진은 심화된 투자 정보를 제공한다며 상급 스터디 가입을 권유한다. 최근 확인된 사례에서는 가입비로 20만 원에서 300만 원까지 요구했고, 목표 수익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겠다는 조건도 제시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불법 투자리딩방 사기 피해액은 2024년 7,104억 원, 2025년 6,581억 원이였고, 2026년 상반기 피해액 역시 3,366억 원에 달했다.
피해자의 심리 : 정보보다 사람을 믿기 시작한다.
주식 스터디방에 들어가 있으면 처음에는 오늘 어떤 종목을 추천하는지 궁금하지만, 나중에는 누가 정보를 제공하는지, 다른 참가자들은 얼마나 수익을 냈는지, 자신을 관리해 주는 매니저가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인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사기범은 이 변화를 기다린다.
매일 반복되는 출석 인사와 시장 분석은 스터디방을 익숙한 공간으로 만든다. 참가자들의 수익 인증과 축하 메시지는 다른 사람들도 이곳을 믿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개인 매니저가 자신의 투자 상황과 고민을 세심하게 물어보면, 자신을 특별히 관리해 준다는 느낌도 받는다.
그러다 유료 가입을 권유받으면 혼돈스러워진다. 지금까지 무료로 얻은 정보로 작은 수익도 경험했고, 쌓아 온 관계와 시간이 아깝고, 다른 참가자들이 수익을 냈다는 대화내용을 보면 나만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불안감도 생긴다. 결국 지금까지 믿어 온 매니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 있다.
심리학적 분석 : 친숙함이 신뢰가 되고, 신뢰가 경계심을 낮춘다
이러한 수법에는 몇 가지 심리적 기제가 작용한다.
첫째는 단순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이다. 사람은 같은 대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그 대상에 친숙함을 느끼고 호감을 갖기 쉽다. 매일 반복되는 출석 체크와 시장 분석, 일상 사진은 특별한 의심 없이 상대를 익숙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한다.
둘째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이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판단이 어려울 때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참고한다. 단체방에서 수익 인증이 이어지고 여러 참가자가 운영진을 칭찬하면, 그 자체가 안전성과 수익성을 입증하는 증거처럼 보일 수 있다.
셋째는 호혜성의 원칙(Reciprocity Principle)이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도움이나 호의를 받으면 이에 보답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무료 투자 정보와 세심한 개인 관리를 제공받은 뒤 유료 가입을 권유받으면, 객관적으로 따져야 할 금전적 제안을 자신을 도와준 사람의 부탁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매몰비용 효과(Sunk Cost Effect)도 작용한다. 이미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노력이 아까워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유료 가입을 망설이는 순간에도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무료 주식 스터디의 경우 반복적인 접촉으로 친숙함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으로 신뢰를 보강하고, 작은 호의로 심리적 빚을 만든 뒤 유료 관리를 받게 유도한다. 돈을 바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요구하기 전에 의심할 이유를 하나씩 없애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승환 경감의 조언
무료 스터디라는 이유로 경계를 풀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비용을 받지 않더라도 이후 유료 가입이나 별도 프로젝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가입비를 요구받으면 즉시 송금하기보다 운영 주체와 계약 조건, 투자 관련 등록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수익을 보장하거나 손실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면 특히 경계해야 한다.
또한, 단체방에서 알게된 개인 매니저에게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투자 규모와 자산 상황, 연락처 등은 단순한 상담 자료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사기범이 피해자의 경제적 여력과 심리적 약점을 파악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체방에서 다른 사람들이 수익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투자 기회가 안전하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그 사람들이 실제 투자자인지, 수익 인증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가입비를 보냈거나 사기가 의심된다면 추가 송금을 중단하고 대화 내용과 계좌 정보, 송금 내역을 보존한 뒤 경찰에 신고할 지를 주의 사람들과 판단해 봐야한다.
사기범은 사람을 속이기 위해 반드시 거짓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친절하게 말을 걸고, 매일 안부를 묻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믿을 만한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
돈을 요구하기 전까지 좋은 사람이었다는 이유로, 돈을 요구하는 순간까지 믿어서는 안 된다.
이승환 경감(경찰청 치안정보국), '사기 프로파일링' 저자영문기사 보기 (View English Article)※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