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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중국에 다 먹히는데 마른걸레 짠다…돌파구는? ②트럼프 관세가 K배터리에 기회 될 수도…"틈새로 美 시장 공략" ③中 대신 美에 '무게 싣는' K배터리…절실한 '한국판 IRA' (계속) |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국내 배터리 업계가 생존 전략 모색에 나섰다.
그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국 전기차 시장을 고려해 중국 업체와 협력을 강화해 왔지만 고율의 관세로 중국 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틈을 타 미국 시장 공략에 드라이브를 걸며 전략 수정에 나선 것이다.
업계는 다만 글로벌 통상환경이 급변하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선 직접 보조금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중국과 거리 두는 韓 업체들…'관세전쟁' 물밑 움직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 관세전쟁으로 시장이 혼란스럽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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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국내 일부 배터리 업체는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중국과 거리두기가 대표적이다. 전기차 산업 성장에 따라 중국과의 협력을 확대해 온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각종 사업을 순연하고 나선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코발트 생산업체 화유코발트와 설립한 배터리 리사이클 합작법인(JV)의 공장 설립을 미뤘고, SK온과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중국 GEM이 추진한 3사 합작법인 지이엠코리아뉴에너지머티리얼즈 설립은 무산됐다.
포스코홀딩스가 중국 CNGR과 손잡고 추진하던 니켈 합작 공장 신설 프로젝트도 중단됐다. LG화학은 중국 화유그룹 산하의 유산과 모로코에 5만t 규모의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합작공장을 짓기로 했다가 순연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단순히 미국의 관세 정책 때문으로 협력 움직임이 중단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최근 글로벌 환경에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여러 변수를 고려한 뒤 중요 결정을 내리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 시장 진출에는 적극적인 모습이다. 미국의 공격적인 대중 견제로 중국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 저하가 전망되자, 국내 업체가 시장 개척에 나서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대한 투자가 눈에 띈다. LG에너지솔루션은 4월부터 미국 미시간 공장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 양산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삼성SDI도 2027년부터 미국 현지 생산으로 ESS 및 전기 자동차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IBK투자증권 이현욱 연구원은 "트럼프 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견제를 더욱 강화하는 추세로, 이는 한국 배터리 업체 및 소재사들에게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며 "한국 배터리 업체들로서는 단기적으로 관세 영향에 따른 수혜가 예상되는 북미 지역에 집중하는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무게 중심 이동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세 전쟁의 향방,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등 향후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형곤 세계지역연구1센터 선임연구위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미중 관세 전쟁이 격화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원재료에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다"며 "일종의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공급망을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산업 구조를 고려할 때 우리가 '완전히 중국 대신 미국에 의존하겠다'는 기조는 불가능하고 그런 시그널을 보내는 것도 비합리적이다"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점진적으로 균형을 맞춰가야 할 부분"이라고 성명했다.
연합뉴스기회 살리기 위해 '한국판 IRA' 추진해야…국회 개정안 발의
업계는 현재의 불확실성을 기회로 바꾸기 위해선 국내 배터리 산업에 대한 지원책이 보다 파격적이고 정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으로 국내 배터리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한국판 IRA 도입 목소리가 높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해 자국 산업을 육성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직접 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시설 투자액에 대해 세액공제 15%를 지원하고 있긴 하지만 이익에 대한 법인세 감면이기 때문에 적자인 경우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은 1분기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반면 미국은 IRA를 통해 대규모 세액 공제와 함께 직접 환급제를 도입하고 있다. 배터리 공장 투자액의 30%를 보조금으로 돌려주고, 1kWh당 45달러의 생산 보조금을 주는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가 대표적이다. 세액공제 거래도 가능해, 적자 기업도 공제 금액만큼 이익 보전이 가능하다.
배터리 산업 지원에 대해선 중국도 미국과 비슷한 기조를 갖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중국 대표 배터리 업체인 CATL은 2023년에만 중국 정부로부터 8억1천만 달러(약 1조2천억 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중국은 또 설비 투자 및 세금 감면 등으로 자국 배터리 기업 총 투자액의 최대 40%가량을 인센티브로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1조 위안(약 200조원) 규모의 펀드를 설립해 배터리 등 산업에 대규모 금액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법인세 감면 외 보조금이 전무한 국내 업체가 미국과 중국 기업과 정면으로 경쟁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우리 정부도 더 늦지 않게 직접환급제를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치권도 여야 할것 없이 배터리 산업 지원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7일 국회 이차전지포럼 대표인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의원은 배터리 세액공제 직접환급제를 내용으로 하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기업이 적자를 내거나 최저한세에 걸려 세액공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경우, 미공제 금액을 정부가 환급하거나 제3자에 양도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설비 투자 지원뿐만 아니라 국가전략기술사업 생산 촉진 세제 신설과 연구개발(R&D) 지원 내용도 담겼다. 국민의힘 이상휘·김정재 의원도 지난달 '이차전지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 토론회를 열고 반도체 업계 직접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논의를 진행했다.
다만 정치권이 '대선 준비모드'에 들어간 만큼 관련 입법 논의가 탄력을 받기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정치권에서 배터리 산업 지원 법안을 대선 공약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영대 의원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의 주요 공약으로 포함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