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와 한덕수 예비후보가 국회 사랑재 카페에서 공개회동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개헌'을 중심으로 '반(反) 이재명 빅텐트'를 치려고 했던 보수진영이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수렁에 빠졌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당 지도부간 힘 겨루기 양상이 격화되면서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경선 내내 무소속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내겠다는 전략을 썼고, 지도부는 그를 철썩같이 믿고 단일화 로드맵을 짰다. 그러나 양측의 '동상이몽'이 확인되면서 정면충돌하고 있다. 김-한 후보의 단일화 2차 회동도 결렬되자 당 내에서는 후보 등록 포기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金 반발에도 여론조사 강행…소송전 된 단일화
국민의힘 지도부와 김문수 후보는 최종 경선 이후 내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도부는 나흘 연속 의원총회를 열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록일인 11일 전까지 한덕수 후보와 단일화를 압박하고 있다.
이를 상대로 김 후보는 전당대회로 뽑힌 대선 후보를 지도부가 끌어내리려고 한다고 반발했다. 당이 7일 단일화 강행 방침을 밝히자, 김 후보는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 주 수요일(14일) 방송 토론을 하고 목·금(15~16일)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 하자고 '역제안'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대선후보 단일화 관련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김 후보는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부터 주도권을 놓지 않고 있다. '대선 후보 선출'을 무기로 지도부의 단일화 로드맵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후보는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당무우선권을 발동한다"고도 강조했다. 당헌 제74조에 규정된 당무우선권은 '대통령 후보자는 선출된 날부터 대선일까지 선거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당무 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해 가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법적 절차를 밟는 등 '강공 모드'도 이어가고 있다. 법원에 전당대회 개최 중단에 이어 대통령후보자지위인정 가처분 신청도 냈다. 김 후보 측은 당 지도부가 후보의 반발에도 단일화 여론조사를 강행하자 이를 막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김 후보의 '선의'에 기대 한 후보와 단일화를 서두르려고 했던 당 지도부가 김 후보의 '변심'에 완전히 되치기 당하면서 오히려 당을 폭파 직전까지 몰고 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에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단일화 불발시 사퇴를 시사했고 권성동 원내대표는 단식 농성에 돌입하는 등 지도부도 배수의 진을 쳤다.
당 지도부 내에서는 최악의 경우 중앙선관위에 대선 후보를 등록하지 않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비대위가 당 대선 후보를 의결하지 않고 김 후보가 선관위에 후보자 등록 신청을 할 수 없게 하겠다는 논리다.
이른바 '옥새 파동'처럼 도장을 안 찍어주면 당의 대선 후보로 뛸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겠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상 정당 추천 후보자는 당 대표 직인이 찍힌 추천서를 제출해야 등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후보 측은 설마 당이 대통령 후보를 아무도 안 내는 악수를 두겠느냐며 맞받았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8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실 앞에서 김문수 당 대선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간 단일화를 촉구하는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2차회동도 빈손…개헌·반명 빅텐트는 사라지고 기싸움만
김-한 후보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점도 단일화를 어렵게 하고 있는 대목이다. 두 후보는 1시간 가량 2차 회동을 가졌지만 서로를 향한 지적만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한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22차례 단일화를 말씀하시지 않았느냐"고 묻자, 김 후보는 "왜 입당하지 않느냐"고 되묻는 패턴이 이어졌다.
두 후보 간 견해 차가 증폭되면서 한 후보에 우호적인 의원들 사이에서도 "자충수였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의원들 사이에서도 당 지도부가 '로드맵'에 대해 김 후보한테 사전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밀어붙이기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반응이 나온다"고 전했다.
당장 당 내에서는 '개헌'과 '반 이재명'을 중심으로 한 빅텐트는 어디 가고 지도부와 대선 후보 간 기싸움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비판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입법 폭격을 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맞서 싸울 후보로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내부와의 싸움에 더 천착하고 있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이 비장의 카드로 내세운 게 '임기 단축 개헌론'과 '보수 진영의 빅텐트'였는데 힘이 빠져버리자 당황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한 후보가 '3년 임기 단축 개헌 카드'를 무기로 꺼내들었는데 단일화 과정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흐르면서 아무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됐다"며 "지금대로라면 단일화를 하더라도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