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기념촬영 후 의총장을 나서고 있다. 황진환 기자국민의힘 지도부가 기획·실행한 후보교체 시도가 당원들의 저지로 무산됐다. 한덕수 후보로 교체하는 방안에 대한 전 당원 찬반투표에서 예상외로 부결이 나왔기 때문인데, 대선후보 자격을 회복한 김문수 후보는 11일 중앙선관위에 후보등록 절차를 마쳤다. 그러나 전무후무한 막장드라마를 연출한 당 지도부는 특정후보 차출을 위해 강압과 상식파괴를 서슴지 않아 '범보수 빅텐트'라는 명분은커녕 오히려 지지층 분열과 극심한 정치혐오만 초래했다.
한덕수 옹립 시도는 12.3 계엄의 밤을 연상케하듯 주말 야음을 틈타 군사작전처럼 전개됐다. 당 지도부는 단일화 여론조사 강행을 시작으로 칼을 빼들더니 10일 새벽 비대위와 당 선거관리위원회를 열어 김문수 대선후보의 자격 박탈과 새 후보자 선출 의결, 한덕수 전 총리의 입당, 후보 등록 안건 등을 일사천리로 의결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일찌감치 "더 큰 지도자가 되려면 자기 자신도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언급한 걸로 볼 때 애초부터 지향점은 한덕수 추대였던 게 분명하다.
모두가 잠든 새벽 3시~4시까지 1시간 동안 전격적으로 후보 등록 신청을 받은 결과 한덕수 전 총리만 단독으로 후보신청을 했다. 누가 뭐래도 짜고치는 고스톱이자 민주정당이기를 포기한 반민주적 작태다. 당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되지 않았더라면 11일 전국위원회 추인을 거쳐 한덕수 후보를 최종 후보로 확정하는 수순을 밟았을 것이다. 불복과 분열이 빤히 보이는 장면이다. 대선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당 지도부는 이 모든 파행을 "당원의 요청에 의해 진행된 일"이라든가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세우기 위한 결단"이었다고 해명했는데, 과연 그럴까?
국민의힘 후보교체가 비정상인 이유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단일화 설계 자체가 후보등록 직전 시점에 초점이 맞춰진 듯 치밀하다. 한 전 총리는 공직사퇴 시한 막판까지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며 지지율 상승의 기회를 누렸다. 동시에 당내 경쟁을 회피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냈기 때문에 무임승차 시나리오는 지도부와 한 전 총리의 상호 교감 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김문수 후보가 지난 3일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지 불과 3시간 만에 당 지도부가 단일화 압박에 나선 것은 민주적 후보선출 절차를 파괴하는 폭력이다. 상식적이라면 단일화를 하더라도 자기 당 후보의 몸집을 키워 경쟁에서 승리하도록 만드는게 정상인데, 그 흔한 컨벤션효과조차 누리지 못하게 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대선후보 사무실에서 만나 포옹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강제단일화를 밀어붙이다보니 한덕수 전 총리의 입당 과정도 상식파괴 그 자체다. 대통령 후보자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후보자 등록기간(5월 10~11일) 중 당적 변경을 하면 안되도록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전 총리는 대선후보 등록기간 첫날 입당해 법적 논란을 자초했다.
설사 이런 식으로 후보교체가 이뤄졌다한들 시너지를 기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단일화로도 어려운 판국에 당 지도부가 사실상 한덕수 옹립 절차에 돌입하자 당원들의 반감은 극대화됐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잇단 가처분신청으로 당내 문제는 법정 싸움으로 비화했다. 당내 경선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주자들도 등을 돌려 지지층 분열은 가속화됐다.
결국 국민의힘의 주말 쿠데타는 막장드라마라는 거센 비판여론과 함께 당원들의 반발에 부닥쳐 무력화됐다. 노동운동가 출신에 3선 국회의원, 경기지사, 고용노동부장관을 두루 지낸 김문수 후보의 관록과 개인기, 그리고 수난당하는 '언더독' 이미지가 정면돌파의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9일 의원총회에서 "당 지도부의 강제단일화에는 응할 수 없다"며 반격에 나선 것은 승부수로 보인다.
하지만 대선의 큰 흐름은 시대정신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때맞춰 지지층 결집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낸 걸로 볼 때 다수 국민들은 시대정신을 다시금 떠올릴 것이다. 비록 후보 찬탈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지만 탄핵을 반대했던 김문수 대선후보 앞에는 엄연히 탄핵의 강이 가로놓여있다. 야당은 벌써부터 "윤석열당이 전광훈당으로 바뀐 것 뿐"이라고 직격했다.
국민의힘은 사망선고…전면 쇄신하거나 비켜주거나
정당민주화라는 관점에서 국민의힘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당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악순환 속에서 합리적 보수성향 인물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 결과 지난 10여년간 국민의힘은 대선 때마다 땜질식 외부수혈에 의존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적전분열을 불사하며 '윤석열 아바타'로 불리는 한 전 총리 추대에 매달린 것은 대선보다 당권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들이다. 국민의힘이 민주정당이라기보다 기득권 카르텔에 더 가깝다는 걸 보여주는 단면이다.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국민의힘을 살릴 생명줄은 전면적인 인적쇄신을 동반한 혁신 뿐이다. 공천을 매개로한 기득권을 혁파하기 위해 공천민주화도 시급하다. 수레에 두 바퀴가 필요하지만 이대로라면 보수궤멸은 시간문제다. 거듭 강조하지만 고쳐쓰기 힘들다면 국민의힘은 건강하고 새로운 보수에 길을 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