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태안화력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조사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진일 대책위 상황실장이 1차 사고조사 발표를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충현(50) 씨가 숨진 사고와 관련해 노동계가 "김용균 이후, 외주화와 안전시스템의 공백이 만든 사고"이라며 구조적 책임을 강하게 제기했다.
태안화력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5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책위는 "김용균 사고 이후 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는 방호울이 설치됐지만, 컨베이어벨트보다 더 많은 감김 사고가 나는 선반 회전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안전장치조차 마련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사고 당시 김씨가 작업하던 기계에는 방호커버가 있으나 접근에 대한 방지용도가 아닌 가공시 비산되는 쇳조각 등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회전하는 공작물이 있는 부분에는 (방호커버가) 없고 척 부위와 왕복대 부위에만 설치돼있었다"고 강조했다.
사고는 지난 2일 오후 2시 30분쯤 발생했다. 김씨는 태안화력발전소 내 한전KPS 태안화력사업소 기계공작실에서 혼자 금속 부품을 선반기계로 가공하던 중 숨졌다. 그가 가공하던 부품은 타원형의 막대기 구조로, 기계에 안정적으로 고정하기 어려운 형태였다.
대책위 최진일 상황실장은 "양쪽이 둥그런 직사각형의 형상을 조일 때는 각각 독립적으로 조절되는 단동척이 적절했지만, 현장에는 단동척이 없었고 일반적인 연동척만 있었다"며 "공작물이 강하게 물려있지 않으면 회전 반경이 굉장히 커진다. 그렇게 회전하는 상황에서 소매부터 빨려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태안화력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조사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류영주 기자
김씨는 사고 당시 작업장에 혼자 있었고, 작업 전 이뤄져야 할 'TBM(tool box meeting)'도 형식적으로만 진행됐다는 게 대책위의 설명이다.
김씨가 작성한 TBM을 보면, 미리 복사한 문서에 날짜와 작업 내용을 추가로 기입한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는 "TBM회의도 혼자, 서류작성도 혼자, 유해위험 파악도 혼자한 것"이라며 "하청업체와 KPS 관리자의 서명이 있지만, 이는 형식적으로 이뤄진 것일 뿐 작업자의 작업 공정상 위험요인에 대한 안전관리가 젼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또 "작업지시 없이 김 씨가 임의로 작업한 것처럼 주장한 한전KPS 측의 입장도 사실과 다르다"며 "TBM서류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고인의 작업은 임의로 실시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앞서 한전KPS 측은 고인이 '작업 오더에 포함되지 않은 작업'을 하다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다가 유족과 노동계의 강한 반발에 "사고 원인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위를 설명하다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책임을 회피하거나 재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 추가 입장을 냈다.
한전KPS 관계자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결과에 따라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서부발전→한전KPS→한국파워O&M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 구조의 2차 하청 소속 노동자였다. 대책위는 "김용균 이후 강화된 안전시스템이 원하청 구조 안에서 더 취약한 집단에 위험을 고이게 만들었다"며 "김용균 특조위의 우려대로 2차 하청의 가장 주변화된 노동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대책위와 유족은 △노조·유족 참여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원·하청의 사과와 배·보상 △정규직 전환 및 인력 확충 △위험 작업 2인 1조 원칙 보장 △발전소 특별근로감독 및 폐쇄 대응 고용보장 등을 요구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도 이번 사고에 대해 특별감독에 준하는 수준의 대응에 나섰다. 노동부는 태안발전소의 안전·보건 관리 실태 전반을 감독하고, 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사법조치와 과태료 부과 등 엄정하게 조치할 계획이다. 원청인 한전KPS에는 안전보건진단명령을 내리고, 사고 목격 노동자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도 지원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관계부처 합동 감식과 함께 사고 당시 작업지시 여부, 방호장치 설치 등 위법 여부를 철저히 수사해 법에 따라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