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단 전경. 전남도 제공▶ 글 싣는 순서 |
①안팎으로 악재만…불황 속 여수산단의 현주소는 ②'업계 불황' 여수산단은 직격탄…울산은 경쟁력 확보 ③울산시 원스톱 기업 지원 체계 '성과'…갈 길 먼 여수 행정 ④여수시,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코앞에 두고 엇박자 행정만 ⑤'여수산단 위기 극복' 대선 공약 바라는 지역사회 역할은 ⑥정부 지원에 한숨 돌린 여수, 기업 스스로 되짚어야 (끝) |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과 중국·중동발 공급과잉 등으로 석유화학산업의 직접지인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위기에 처한 가운데 최소한의 정부 지원이 확정되면서 한숨을 돌리는 모습이다.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로 여수가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에 지정되면서 금융 및 연구개발 지원 등이 이뤄질 전망이지만 한시적인 방책인 만큼 이번 지정을 계기로 산업 위기에 대응하는 기업 스스로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7일 전라남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내부 심의를 거쳐 여수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최종 확정했다.
이번 지정으로 긴급경영자금, 보조금 우대와 함께 정책금융이 강화되고 만기연장과 상환 유예, 우대보증도 진행된다.
연구 개발과 경영 자문, 고용 안정에 대해서도 내년 이후 예산 반영이 가능하며 지정 기간은 2년이다.
여수시는 이 기간 지방교부세 622억 원을 추가로 배정 받게 됐으며 전라남도와 여수시는 3707억 원 규모의 5개 분야, 19개 지원 사업을 발굴해 정부 예산을 확보할 방침이다.
지난 3월 24일 열린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 현지 실사 기업간담회. 전남도 제공이같은 지원 결정은 여수지역 산업계의 침체를 반증하는 것으로, 석유화학업체가 몰린 여수산단은 대내외 불황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의 에틸렌 수출 규모는 184만 9천t으로, 2020년(84만 8천t)에 비해 2배 이상 늘었으며 이는 에틸렌을 활용한 국산 유도품 생산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은 각종 플라스틱, 고무, 섬유의 원료로 쓰인다.
실제 고밀도폴리에틸렌(HDPE),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 저밀도폴리에틸렌(LDPE), 선형저밀도폴리에틸렌(LLDPE), 에틸렌글리콜(EG), 스티렌모노머(SM) 등 에틸렌을 활용한 대표적인 유도품 6개 품목 수출이 5년 전에 비해 5% 가량 감소했다.
이에 반해 에틸렌을 생산하는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은 유도품 생산 감소에도 지난해 81.7%를 유지했다.
원유를 나프타로 분해해 에틸렌을 생산하고 이를 가공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수출해 실적을 챙겨온 그동안의 추세와 상반된다.
중국발 가공제품 등에 밀려 세계 시장에서 에틸렌을 가공한 고부가가치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국내에서 소진하지 못하는 에틸렌을 수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에틸렌 수출도 글로벌 공급과잉의 여파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순수 마진을 뜻하는 '에틸렌 스프레드'는 올해 3월 기준 1t당 218달러로, 손익분기점으로 여기는 250~300달러를 훨씬 밑도는 수준이다.
2028년까지 예상되는 에틸렌 등 석유화학 원료 글로벌 공급과잉 규모는 6100t으로 한동안 글로벌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업계 불황에 대응해 구조조정을 비롯, 원료 생산비를 낮추기 위한 신사업을 추진하는 실정이다.
울산 샤힌 프로젝트 공사 현장. 유대용 기자울산에서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가 중장기 대응책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이 사업은 기술력을 앞세운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국내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단지를 구축하는 것으로, 약 9조 3천억 원을 투자해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제품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내년 말쯤 공장이 정상 가동에 들어가면 연간 에틸렌 180만t, 프로필렌 77만t 등의 기초 유분과 LLDPE3 88만t, HDPE 44만t의 폴리에틸렌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틸렌만 보더라도 연간 국내 총 생산량(1270만t)의 14% 이상을 생산하는 것으로, 이는 여수산단의 한해 에틸렌 생산량의 3분의 1 수준에 달한다.
여수산단 입주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악화에 이어 국내 생산에서도 위축되는 이중고를 겪게 되는 셈이다.
여수산단에서는 GS칼텍스가 추진하는 '탄소 포집·활용·저장기술(CCUS) 클러스터' 구축이 중장기 대안으로 제시된다.
CCUS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산업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대기로 내보내지 않고 저장하거나 자원화하는 기술로 최근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여수산단의 경우 연간 300만t 이상의 이산화탄소 포집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전환과 탄소감축을 위한 신사업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CCUS 클러스터 구축은 여수산단 석유화학업체들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게 GS칼텍스의 설명이다.
다만, 이같은 대응책 역시 CCUS 클러스터 지정 등 정부 협조을 전제로 하고 있어 사업을 구체화하기까지 풀어야할 숙제가 많은 실정이다.
여수산단 입주기업이 지역사회를 외면, 현재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원스톱 지원 체계 등의 친기업 정책으로 주목받는 울산시와 비교할 때 여수시와 전라남도의 행정에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 여수산단 입주기업들이 산업 위기와 관련한 공론화작업에 소홀했다는 의미다.
전남연구원 김대성 사회정책연구실장은 "국가 기간산업의 한축인 여수산단의 침체는 입주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과 국과가 함께 가야하는 부분이지만 입주기업들이 평상시에 지역사회와의 연계에 미흡했던 것 같다"며 "위기에 처하고 나서야 정부 지원을 위해 지자체에 나서달라고 요구하는 모양새다. 평상시에 지자체와 함께 산업위기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이미 지역과 기업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별법 제정과 고용위기지역 지정 등의 후속 대책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한편, 이번 기회에 수익 창출이라는 기업의 목적과 기업의 지역성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